[세계의 축제/스위스]섣달그믐 액막이 요들송

  • 입력 1997년 1월 17일 20시 19분


「우르내슈〓申然琇기자」 지난 13일 오전 9시 스위스의 우르내슈(Urnasch). 취리히에서 기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이 작은 마을에서는 아침부터 요들송이 울려퍼졌다. 주변은 온통 하얀 눈의 세상. 마을은 흰 산들로 첩첩이 둘러싸여 있고 자그마한 집들도 눈을 머리에 인 채 고요한데 마을 곳곳에는 화려한 복장을 한 「클로이제(정령)」들이 부르는 요들의 화음이 메아리쳤다. 이 날은 이 마을의 구력(舊曆·율리우스력)으로 쳐서 96년12월31일. 한국식으로 섣달 그믐날인 이날 마을의 청장년 남자들은 6,7명씩 조를 짜서 마을을 돈다. 「실베스터 클로이제(새해의 정령)」로 분장한 이들은 집집을 방문해 악귀를 쫓아내고 새해의 복을 빌어주는 것. 한국 농촌에서 정월 대보름에 액막이를 하고 새해 안녕을 기원하는 지신밟기가 징과 꽹과리를 연주하는데 비해 이들은 요들과 종을 울리고 지신밟기 일행이 사대부 포수 등으로 분장하나 이들은 클로이제로 분장한다. 이날 오전 남편이 엔지니어라는 에리카 필러(45)의 집 문앞. 머리에 거대한 관을 쓰고 앞뒤로 커다란 종을 맨 클로이제들이 온몸을 뒤흔들어 종을 울리며 클로이제가 왔음을 알렸다. 집주인이 나오자 이들은 리더의 선창에 따라 『야∼ 우리∼』하며 요들을 불렀다. 가사도 악보도 없는 이 요들은 조상대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노래. 알프스의 깊은 산중에서 양치기들이 부르는듯한 묘한 화음이었다. ▼ 12월말―1월 두차례 열려 ▼ 한곡의 노래가 끝나자 클로이제들은 다시 몸을 흔들어 종을 울리며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요들. 노래로 기원을 마친 이들은 주인과 악수를 하며 새해 안녕을 기원하는 인사를 주고 받았다. 주인은 와인과 음료수를 들고 나와 빨대로 이들에게 먹여 주었다. 클로이제들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어서 마실 수 없기 때문. 필러는 『내 아버지도 클로이제였고 지금 내 동생도 클로이제로서 마을을 돌고 있다』며 『우리 마을 출신들은 외지에 나가 있더라도 이때가 되면 휴가를 내고 집에 돌아온다』고 말했다. 몇분후 이 집에는 다른 클로이제들이 찾아왔고 클로이제의 행렬은 하루종일 계속됐다. 클로이제들은 하루종일 마을을 순회한 뒤 밤에는 집집에 모여 요들을 부르고 종을 울리며 밤을 지샌다. 한국에서 그믐날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고 날밤을 새는 것과 유사한 전통이다. 이날 마을을 돈 것은 20개의 클로이제 집단들. 클로이제에는 미의 클로이제와 추의 클로이제, 자연의 클로이제가 있는데 추의 클로이제는 얼굴에 짐승의 뿔을 달고 흉측한 가면을 쓰며 소나무 가지나 지푸라기로 온몸을 장식한다. 섬뜩한 모습으로 묵은 악령들을 쫓아낸다는 의미가 있다. 자연의 클로이제는 솔방울 등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전나무 등으로 장식을 하는데 미와 추의 중간얼굴을 하고 있다. ▼ 노래와 덕담 주로 나눠 ▼ 19세기에 시작됐다는 미의 클로이제는 머리에 원반 모양의 커다란 관을 쓰고 알프스 특유의 치마를 입은 여자로 분장한다. 곱게 화장을 한 여자의 얼굴에 꽃한송이를 입에 문 가면이 애교스럽다. 클로이제의 의상은 보통 몇개월동안 직접 공들여 만든 것이며 무게가 종까지 합해 30㎏에 달한다. 의상을 파는 것은 금기. 클로이제에게 말을 걸면 그들은 못들은척 달아나버렸는데 『클로이제는 정결한 마음으로 노래와 덕담을 할뿐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게 돼있다』는 것이 마을사람들의 설명이었다. 이 마을의 대표인 베르너 네프는 『내가 어릴 때는 우리 마을만의 축제였는데 이젠 매년 수천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스위스를 대표하는 축제의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실베스터 클로이제 축제의 기원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아주 오래전 먹을 것이 없었을 때 맨얼굴로 구걸을 하기 부끄러웠던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음식을 구하러 다니면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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