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과 마법사의 첫 발걸음] 무혈입성 신생구단은 견제의 대상…힘든 시기 이겨낸 NC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8일 05시 45분


2. ‘특채’ NC와 ‘공채’ kt의 정반대 프로야구 입성(상)

무경쟁 NC, 타구단 견제에 프런트 스카우트 제동
타종목 스포츠마케팅 경험자·외부에이전트로 시작
‘공채 사원’ kt는 대부분 경쟁구단서 베테랑 영입

2011년 4월. 야구단 창단을 시작한 NC가 ‘A구단 스카우트팀 B를 영입하려고 접촉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몇몇 구단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실 야구단 직원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이직이 자유롭다. 프로선수처럼 계약금을 받고 입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로 자유롭게 이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신생팀이 상도의를 무시하고 기존 구단의 핵심 프런트를 빼가려 한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NC 다이노스의 1호 프런트였던 이상구 전 NC 단장은 결국 “절대 다른 팀에서 프런트를 스카우트하지 않겠다. 기존 구단들에 대한 존중의 뜻을 담아 결정했다”고 못 박았다.

2013년 kt는 외국인선수 선발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조찬관 KIA 스카우트팀장을 영입했다. 이후 각 구단에서 베테랑 프런트를 스카우트했다. 현재 kt의 운영·스카우트·육성팀 등 핵심 라인업에는 모두 타 구단 출신 프런트가 포진하고 있다.

훗날 매우 큰 영향을 미친, 결정적으로 다른 출발이었다. NC가 이 같은 어려운 결정을 한 배경에는 ‘무경쟁 창단’이 있었다. NC와 창원은 공식 공고나 모집 없이 사실상 유영구 전 KBO 총재,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박완수 전 창원시장의 삼각협의로 제9구단과 연고도시가 됐다.

2010년 12월 유 전 총재는 “3개 기업에서 프로야구 창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먼저 엔씨소프트가 창원에서 제9구단으로 창단하고, 나머지 2개 기업(끝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중 한 곳을 10구단으로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엔씨소프트는 경쟁 없이 제9구단을 창단하고, 다른 2개 기업은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무혈입성 특혜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얼마 뒤 알려진 사실이지만, 유 전 총재는 명지학원 이사장 시절 배임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기 직전이었다. 신생구단 창단은 국면전환용 또는 검찰, 정치권과의 마지막 협상 카드였다는 추측이 뒤따랐다. 유 전 총재는 결국 수감됐고 현재 복역 중이다.

당시 100만명 안팎의 인구 규모를 자랑하는 연고지역 내 2번째 도시를 내줘야 했던 롯데는 극렬히 반대했다. 장병수 당시 롯데 대표는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큰 미국과 일본도 프로야구단은 인구 1000만명당 1개 수준이다. 9개, 10개는 너무 많다. 무엇보다 충분한 검토 없이 이렇게 빨리 진행해선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비유하자면 NC는 공채가 아닌 특채로 입사한 꼴이다. 당연히 시기도 많았고, 견제도 뒤따랐다. NC로서도 프로야구 전문인력이 절실했지만 롯데에서 퇴사한 상태였던 이상구 전 단장과 고교 지도자 출신들로 창단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하고 있던 타 종목 스포츠홍보 경험자와 신문기자 출신, 스포츠마케팅 경험자 등이 추가로 모였다. 전문성이 절실한 용병 스카우트는 외부 에이전트에 의뢰했다. 3년 뒤 치열한 경쟁 끝에 KBO 회원사가 된 ‘공채사원’ kt와는 그 시작이 전혀 달랐다. ‘특채사원’ NC의 프런트는 그동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신선한 기획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하편에서 계속>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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