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 18㎏ 빼고 이날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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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9일 07시 00분


9구단 엔씨소프트 첫 선수공개테스트 현장을 가다

8팀 유니폼 다 모여 ‘올스타전 풍경’
서울서 내려온 아버지는 관중석 응원
재일교포·군 제대 등 사연도 제각각
창단협약 창원시의회 통과 희소식도

경남 창원시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 제9구단인 ‘엔씨소프트 다이노스’의 1차 트라이아웃(사전 테스트)이 28일 마산야구장에서 열렸다. 투수조 권보현 선수가 역투하다 모자가 벗겨지고 있다. 창원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트위터 @binyfafa
경남 창원시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 제9구단인 ‘엔씨소프트 다이노스’의 1차 트라이아웃(사전 테스트)이 28일 마산야구장에서 열렸다. 투수조 권보현 선수가 역투하다 모자가 벗겨지고 있다. 창원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트위터 @binyfafa
28일 창원은 많은 비가 예보됐었다. 하지만‘오늘은 제발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하고 바랐던 54명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오후 4시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햇볕도 없고, 바람도 없는 ‘야구하기 딱 좋은 날씨’. “하늘이 준 기회다”라는 KIA 출신 양락천(26·투수)의 말처럼 프로야구 30년이 낳은 아홉 번째 심장, 엔씨소프트의 첫 하드웨어가 출발하는 날 하늘도 그렇게 응원했다.

○8개구단 유니폼, 올스타전 아닌 야구인생 연장전

프로야구 제9구단 엔씨소프트의 첫 번째 선수공개테스트, 트라이아웃이 열린 마산구장 덕아웃에는 8개 구단 로고가 선명한 가방이 가지런하게 놓여져 있었다. 총 230명이 참가했고 서류심사를 통과한 55명 중 39명이 프로출신. 공익근무를 마치지 못해 테스트에 나오지 못한 1명을 제외한 54명은 각자 자신의 유니폼을 입고 몸을 풀었다.

SK, 삼성, KIA, LG, 롯데, 두산, 한화, 넥센 8개 구단 유니폼이 다 모인 마산구장. 유니폼만 보면 마치 올스타전의 풍경 같았다. 그러나 선수 한 명, 한 명의 표정은 비장했다. 화려한 올스타전과는 정반대. 야구인생 9회말 2사후도 아닌 연장전에 선 그들이다. 옷장 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프로팀 유니폼을 전장에 나가는 갑옷처럼 정성껏 갖췄다.

○응원만 14년, 그러나 20년까지 하고 싶다

공개테스트는 이날부터 총 3일간 진행된다. 첫 날은 체력테스트와 투수 불펜피칭, 타자 프리배팅으로 치러졌다. 텅 비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관중석은 삼삼오오 흩어진 중년 남녀들이 지키고 있었다.

초조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던 한 중년 남성에게 다가서자 금세 “저기 55번이 우리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아들이 테스트를 받는다는 소식에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 군산에 들러 아들을 태운 뒤 창원까지 달려온 김희배 씨는 선린인터넷고 출신 김영진(25·외야수)의 아버지다.

“아들 쫓아다니며 응원한지 이제 14년 됐어요. 고등학교 때는 계속 4번을 쳤고, 내외야 수비도 다 가능한데 아깝게 지명을 못 받았어요. 군산중학교 코치로 있는데,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고 해서 또 이렇게 달려왔어요. 아들 응원 20년은 꼭 채우고 싶은데, 다른 멤버들이 다 쟁쟁하네.”

경남 창원시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 제9구단인 ‘엔씨소프트 다이노스’의 1차 트라이아웃(사전 테스트)이 28일 마산야구장에서 열렸다. 서성민이 테스트를 마치고 통증을 호소해 응급처치 받고 있다. 창원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트위터 @binyfafa
경남 창원시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 제9구단인 ‘엔씨소프트 다이노스’의 1차 트라이아웃(사전 테스트)이 28일 마산야구장에서 열렸다. 서성민이 테스트를 마치고 통증을 호소해 응급처치 받고 있다. 창원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트위터 @binyfafa


○고향에 생긴 프로팀

SK에서 뛰었던 진민수(26·내야수)는 마산동중∼용마고를 나왔다. 인하대를 졸업하고 SK에 입단했지만 부상 등의 이유로 유니폼을 벗었고 고향 창원에서 공익근무를 하던 중 엔씨소프트 창단 소식을 들었다.

“어제(27일)가 소집해제였어요. 우연의 일치치고는 행운이죠. 그동안 아무런 목표 없이 그냥 운동했어요. 그러다가 고향에 프로팀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집중적으로 몸을 만들었어요. 2년 동안 야구를 못했어요. 얼마나 긴장되는지 몰라요. 배팅 하나는 자신 있어요. 고향 팀에서 꼭 뛰고 싶어요.”

54명의 사연을 책으로 만들면 10권도 부족할 것 같다. 재일교포로 일본 야쿠르트와 한화에서 뛰었던 강병수는 “한국야구와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 아버지가 함께 오셨다. 고국에서 다시 뛰고 싶다”고 말했다. 2009년 KIA에서 유니폼을 벗고 병역을 마친 양락천은 “공익근무 마지막 3개월 동안 18kg을 빼고 오늘을 준비했다”며 웃었다.

○제2의 장종훈, 한용덕을 위해

엔씨소프트 다이노스 이태일 대표는 “신생구단으로 평생 프로야구가 꿈인 선수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무대를 만든다는 것에 큰 의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박동수 스카우트 팀장은 “대부분 수술과 부상, 병역으로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었던 선수들이다. 프로 1군에 근접한 잠재력을 갖춘 선수들도 있다. 많은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같은 날 창원시의회는 우여곡절 끝에 그동안 표결이 무산됐던 ‘프로야구 제9구단 창단 관련 협약서 체결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신생팀이었던 빙그레의 연습생 신화 제2의 장종훈, 한용덕을 찾기 위한 첫 출발, 의회에서 전해진 희소식까지, 엔씨소프트 그리고 창원 야구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순간이었다.

창원 | 이경호 기자 (트위터 @rushlkh)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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