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이가 달릴 때면 눈물이 난다. 자세가 날렵하고 경쾌한 황영조가 달릴 때는 그렇지 않은데 봉달이가 달릴 때면 속이 탄다. 그만큼 봉달이의 자세는 투박하다. 달릴 때 뒷발이 차여 힘이 더 든다.
TV CF캐릭터 광고에서 “오냐 오냐 내 새끼”란 말로 유명한 어머니 공옥희씨(64)는 “쟈는 막내인데도 어릴 때부터 속썩일 일이 없었지유”라고 말한다. “밥 주는대로 잘 먹고 지일은 지가 알아서 허고.”
그만큼 봉달이는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한다. 감독이 있거나 없거나 단 한번도 훈련을 빼먹은 적이 없다. 끔찍한 효자로 소문났지만 큰 대회를 앞두고는 거의 집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몰두형’이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도 될 수 있으면 잘 연락하지 않는다.
경기운영 스타일도 앞서 뛰쳐나가는 것보다는 끈질기게 따라붙는 형이다. 코오롱의 정봉수감독은 “어떤 대회든 봉주가 30㎞까지만 따라 붙는다면 75% 정도는 봉주가 우승”이라고 말했다.
이봉주는 거봉포도로 유명한 천안 성거읍의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때도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였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93년 전국체전에서 2시간10분27초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서서히 마라톤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봉주가 가장 시련을 겪은 것은 98년 코오롱을 뛰쳐나왔을 때. 당시 수많은 악성루머가 나돌았다. “이봉주는 이제 끝났다” “이봉주가 스승 정봉수감독을 배신했다” 등등. 그러나 그때도 이봉주는 아무말이 없었다. 여러 곳에서 팀 창단을 조건으로 오라고 했지만 이봉주는 응하지 않았다. 나 혼자 살자고 후배들을 놔 두고 갈 수 없다는 것. 그 대신 묵묵히 훈련에만 몰두했다. 충남 보령, 경남 고성을 전전하며 오인환코치와 함께 여관에서 5000원짜리 밥으로 때우며 훈련했다. 결국 이봉주는 후배들을 이끌고 삼성전자에 둥지를 틀었고 시드니올림픽전초전으로 출전한 후쿠오카마라톤에서 2시간07분20초의 한국최고기록을 세우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드니올림픽에서의 추락(24위)과 2월 아버지의 별세. 한창 보스턴마라톤 대비 훈련에 급피치를 올리던 이봉주는 한동안 정신적 충격으로 헤매기도 했다. 오인환코치도 “이때가 가장 고비였다”고 말했다.
어머니 공씨는 TV에 아들이 달리는 모습이 나오면 밖으로 나간다. 차마 그 머나먼 100여리 길을 처절하게 달리는 아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 그러나 요즘엔 가끔은 지나치면서 아들의 모습을 조금씩 훔쳐본다. 뿌듯하기도 하고 장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통 말이 없던 봉달이가 요즘 집에 어쩌다 내려오면 밤새 어머니와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운다. “오냐 오냐 내 새끼.”
<김화성기자>mars@donga.com
■보스톤마라톤 역대 한국선수 성적
년도
선수
기록
1947
서윤복
남승룡
2시간25분39초(1위)
2시간41분10초(10위)
1950
한기용
송길윤
최윤칠
2시간32분39초(1위)
2시간35분58초(2위)
2시간39분58초(3위)
1957
임종우
한승철
2시간24분55초(3위)
2시간28분18초(5위)
1966
김복래
유명종
2시간24분44초(10위)
2시간27분52초(14위)
1973
김차환
2시간35분F(35위)
1993
김재룡
2시간09분43초(2위)
1994
황영조
이봉주
2시간08분09초(4위)
2시간09분57초(11위)
1995
김재룡
김완기
김민우
2시간12분15초(7위)
2시간13분32초(12위)
2시간15분08초(16위)
2001
이봉주
2시간09분43초(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