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이봉주 우승은 불가사의…"25번완주는 상상도 못할일"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27분


‘봉달이’ 이봉주(31·삼성전자)는 마라토너에게는 치명적인 짝발이다. 왼발이 248㎜, 오른발이 244㎜. 게다가 거의 평발에 가깝다. 그뿐인가. 눈에 쌍꺼풀이 없어 달릴 때 땀이 눈으로 들어가 영 성가시다. 결국 수술을 하긴 했지만 ‘천연’보다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화보]이봉주 우승까지

그래도 봉달이는 여태껏 공식대회 풀코스를 25번이나 뛰었다. 우승 8번, 준우승 6번. 5위권 밖으로 처진 것도 11번이나 된다. 하지만 한번도 중도에 기권한 적이 없다. 그만큼 끈질기다.

마라토너의 수명은 보통 공식대회 완주 횟수로 따진다. 나이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서른네살 때인 96년에 데뷔해 베를린 런던 동아마라톤 우승, 97·99 세계선수권을 연속 석권한 스페인의 아벨 안톤(39)이 그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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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은 10번을 완주해 5번이나 우승했다. 네번째 도전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우승한 황영조도 기껏 8번 뛴 게 전부다.

세계적인 유명선수들은 거의 15회 정도의 출전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 유명대회 우승자의 출전회수는 7~12회 정도가 가장 많다.

마라토너가 보통 한 대회를 뛰려면 대회 40∼50일전부터 하루 30∼40㎞씩 총 2000㎞ 정도를 뛰어야 한다. 25번을 완주한 봉달이는 여태껏 5만여㎞를 뛰었다는 계산이다.

또 마라토너는 한번 완주할 때마다 보통 2만5000∼2만6000걸음을 내딛는다. 한발을 내디딜 때 받는 충격은 자기 체중의 2.72배 정도. 몸무게가 55㎏인 이봉주의 경우 한번 내디딜 때마다 약 150㎏의 충격을 받게 돼 한번 완주할 때마다 약 400t의 충격을 받는다. 25회를 완주한 봉달이는 공식 대회에서만 1만t의 충격을 받았다는 계산. 연습한 거리까지 따지면 그 충격의 강도는 상상할 수도 없다.

결국 너무 많이 뛰면 발목 무릎 허리의 탄력성이 줄어든다. 스피드가 크게 떨어진다. 이봉주가 준우승을 한 6번 가운데 5번이 96년(14번째 출전) 동아마라톤 이후에 기록한 성적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96년 이후 3번 우승한 기록(96 후쿠오카 2시간10분48초, 98 방콕아시아경기 2시간12분32초, 보스턴 2시간9분43초)이 2시간 10분대 였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봉주는 자동차로 치면 30만㎞를 넘게 달린 차와 같다. 그런데도 그는 세계최고 권위의 제105회 보스턴마라톤에서 보란 듯이 우승했다. 50년 함기용이 우승한 이후 한국인으로선 51년만의 일. 47년 서윤복이 우승한 이후 세 번째. 어떻게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한마디로 봉달이의 '성실성'과 '뚝심' 그리고 '촌놈정신'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후반에 '심장파열언덕(heart break hill)'이 있는 보스턴의 난코스가 봉달이를 도왔다. 평평한 곳에서는 봉달이가 스피드로 결코 아프리카 선수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봉달이는 는 말이 없다. 보스턴으로 출발하기 전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어도 그냥 배시시 웃을 뿐이다. 그러면서 들릴 듯 말듯하게 한마디 던진다.

“그냥 성적에 관계없이 마흔살까지 뛰고 싶어요.”

봉달이는 무섭다.

<김화성기자>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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