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머니’ 뜯기지않게… 국민연금이 맡아 의료-생활비 대신 지급

  • 동아일보

4월부터 공공신탁 시범 운영
기초연금 수급자 750명 우선 관리… 2028년 1만1000명으로 늘릴 방침
사기-횡령 의심땐 관리위가 심의… 전문가 “현금外 자산도 관리 필요”

정부가 ‘치매 공공신탁 서비스’에 시동을 건 것은 눈먼 돈인 ‘치매머니’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고령층의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금고지기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다. 치매머니는 고령자가 치매 등으로 판단력이 흐려져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연금소득, 금융·부동산 등 자산을 뜻한다.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치매 위험군이 되면서 치매머니 관리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올해 100만 명을 넘어선 65세 이상 치매 환자가 2050년 226만 명까지 늘면서 치매머니도 2050년 국내총생산(GDP)의 15.6%인 488조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치매 노인 중 후견인의 도움을 받거나 신탁을 통해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돼 재산을 뺏기고 비참한 노후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 국민연금이 ‘치매머니’ 맡아 생활비 지급

정부가 12일 발표한 제5차 치매관리 종합계획(2026∼2030년)에 따르면 올 4월부터 국민연금공단이 운영하는 ‘치매머니 공공신탁’(치매안심 재산관리 지원 서비스)이 도입된다. 공단이 치매 환자나 후견인과 신탁 계약을 맺고 현금, 임대차보증금, 주택연금 등의 현금성 자산을 관리해 주는 것이다. 신탁 재산은 향후 단계적으로 부동산 등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가입 대상은 기초연금 수급자(소득 하위 70%) 중 스스로 재산 관리가 어려운 치매 및 경도인지장애(치매 전 단계) 환자다. 올해 750명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한 뒤 본사업을 시작하는 2028년 지원 대상을 1만1000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고액 자산가를 제외하고는 무료로 신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치매 환자의 재산을 위탁 관리하면서 이들이 쓰는 의료비나 생활비를 병원 등에 직접 지급하는 방식이다. 청구된 금액이 과도하거나 ‘치매머니 사냥’ 같은 사기, 횡령 등 부정 사용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치매재산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신탁이 단순한 금고지기 역할에 그치지 않으려면 자산관리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치매 고령자의 연금 수령이나 비용 지출만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동산, 보험 등 자산 전반을 관리하는 종합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신탁 금액도 10억 원 이상으로 높여야 더 많은 치매 환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녀나 간병인으로부터의 경제적 착취 우려가 있는 위험군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각 지역 치매안심센터 등 다른 조직과 연계를 통해 공공신탁이 필요한 대상자를 적극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치매병원·주치의 확대… 고령자 운전능력 진단도 강화

정부는 고령 치매 환자의 교통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운전능력 진단 시스템’도 도입한다. 현재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3년마다 치매 선별검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기억력과 사고력 검사에 그쳐 순발력과 상황 판단력 등 실제 운전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가상현실(VR) 기술 등을 활용해 실제 도로 위 상황에서의 반응과 판단 능력까지 평가할 방침이다.

치매 환자가 살던 곳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인프라도 강화한다. 지난해 기준 치매관리 주치의 제도를 운영 중인 시군구는 전국에 42곳뿐인데, 올해 90곳에 이어 내년엔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치매 안심병원도 현재 25곳에서 2030년 50곳으로 늘린다. 다양한 형태의 치매 전담 기관을 통해 집 근처에서 여생을 보내는 치매 노인이 많은 일본처럼 지역 밀착형 치매 환자 관리 모델을 정착시키는 게 목표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 관리가 다른 복지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급속한 고령화로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있는 가정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다음 달 시행하는 의료·요양 통합돌봄 서비스 등을 활용해 치매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치매관리위원회 위원장인 이스란 보건복지부 1차관은 “치매가 있어도 환자와 가족이 안심하고 일상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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