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접수 거부 위법”…14개월 공항 노숙 아프리카인 승소 확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7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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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환승객이라는 이유로 법무부로부터 난민 신청을 거절당한 채 인천국제공항 환승구역에 1년 2개월 가량 갇혀 지내 ‘한국판 터미널’ 사례로 불렸던 아프리카인 A 씨가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앞서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판사 배준현)는 지난달 21일 A 씨가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난민인정 신청 접수를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법무부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A 씨가 공항 환승구역에 있다는 이유로 난민 심사조차 받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13일 판결이 확정됐고 A 씨는 최종 승소했다.

● 공항에 갇혀 탈장으로 쓰러지기도
A 씨는 본국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으며 가족과 지인이 살해당하자 한국을 경유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해 2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지만 법무부는 “환승객은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없고 난민 신청권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A 씨는 인천공항 터미널에서 14개월을 보내며 건강이 악화돼 탈장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이후 법원이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난민법과 국제인권조약을 자세히 검토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한국 공항과 그 환승구역에 있는 외국인에게도 미친다”며 “따라서 한국 공항 환승구역에 진입한 외국인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난민법 5조는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은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무부는 환승구역에 있는 외국인에게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만들어 난민 신청을 거부해왔지만 서울고법은 그러한 법무부의 법해석이 틀렸다고 본 것이다.

● “정착 지원 없어 생존에 위협 느껴”
A 씨를 대리한 사단법인 두루의 이한재 변호사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A 씨는 공항에 갇혀있는 동안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며 난민 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A 씨는 현재 시민단체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지내며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변호사는 “A 씨에게는 작은 생활비도 절실하다”며 “근본적으로 난민 신청자에 대한 제대로 된 정착 지원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난민이 입국해 세금이 펑펑 쓰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난민 신청자들에게는 아무런 정착 지원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제까지 난민의 생존을 시민사회에 기대 해결할 것인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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