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 양금덕 “사죄없는 일본 돈 받지 않겠다” 손편지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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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19일 15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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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α 문희상 국회의장 안 부결 촉구"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문희상 국회의장의 안이 국회에서 대표발의된 가운데 19일 일제 강점기 시절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손편지를 통해 “사과 없는 돈 받지 않겠다”며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이날 오후 광주시 서구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앞에서 열린 ‘문희상 의장 안 반대’ 기자회견에 참석해 직접 작성한 편지를 낭독했다.

양 할머니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께 드립니다”라는 편지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적시하며 문희상 의장의 안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양 할머니는 “나고야 미쓰비시 회사로 끌려간 시기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였다”며 “일본 교장과 헌병은 일본에 가면 중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지만 다 거짓말이었다”고 밝혔다.

또 “미쓰비시는 우리를 동물치급하고 죽도록 일만 시켰으며 친구 6명은 지진에 죽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해방 후 돌아왔지만 마음 편한 날 없었다”며 “남편은 일본에 갔다왔다는 말을 듣고 때리고 외면했다. 내가 지금까지 흘린 눈물은 배한척도 띄우고도 남을 것이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내 나이도 91살이 됐다”며 “돈 때문에 지금까지 산 것이 아니다. 기부금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일본이 나를 무시하더니 당신들까지 나를 무시합니까. 어느나라 국회의원 입니까. 딸이 끌려갔어도 이렇게 할겁니까”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울러 “내가 지금 곤란하게 살아도 거지는 아니다”며 “내가 일본에 가서 당한 수모와 고통을 의원들은 눈으로 안 봐서 전혀 모르겠지만 양금덕이는 절대로 사죄 없는 더러운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1944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에 일본 교장의 말에 속아 미쓰비시 비행기 부품 제조공장에 끌려갔다.

식사 한끼 제대로 하지 못했고 ‘가미카제(神風)’라고 쓰여진 머리띠를 이마에 두른 채 24시간 감시를 받으며 중노동을 강요 당한 뒤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양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소송을 벌여 지난해 11월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았다.

한편 문희상 국회의장은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전범기업들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수혜를 입은 한국 기업의 기부금과 한일 국민들의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내용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개정’, ‘기억·화해·미래재단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광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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