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살길” 정부선임 이사들이 ‘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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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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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협의 없이 ‘전기료 10% 인상안’ 의결 주도

“지난 수년간 한전은 원가만큼의 전기요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정부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이를 정책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싼 전기요금에 익숙해진 국민의 전기 낭비가 더 심해졌다. 급기야 9월엔 전국적 정전사태까지 나지 않았나.”

한전 이사회가 정부와 협의 없이 전기요금 인상안을 단독 의결한 17일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사외이사는 “이번 결정은 그동안의 관례를 깼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만큼 이사진의 위기의식이 컸다”는 말로 회의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지금까지 한전은 반드시 정부와 협의를 거친 후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해 왔다. 먼저 한전 실무진이 인상안 초안을 작성해 지경부에 신청하면 지경부가 기획재정부, 공공요금자문위원회 등과 협의해 인상률을 결정했다. 한전 이사회는 지경부로부터 통보받은 이 인상률을 가지고 의결을 한 뒤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게 수순이었다.

하지만 한전 이사회는 이번 회의에서 이런 관행을 완전히 깼다. 이사회 관계자는 “법적으로 한전이 인상안을 결정하는 데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며 “정부가 이 안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한전 이사회가 이만큼 강력한 의사표현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안건은 한전 사외이사들이 발의하고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한전 사외이사는 정부가 선임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반응이 주목되고 있다. 한전 이사회는 총 15명으로 구성되는데 김중겸 한전 사장을 비롯한 7명의 사내이사 외에 8명의 사외이사가 있다. 현재 사외이사로는 이태식 전 외교통상부 차관, 이기표 부산푸드뱅크 이사,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 교수, 신일순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해주 전 통상산업부 장관, 남동균 전 기획예산처 성과관리 본부장, 안현호 전 지식경제부 1차관이 활동하고 있다.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사외이사는 “한전의 지난해 말 부채가 33조4000억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대로는 우리나라 전력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전은 상반기에만 1조3042억 원의 영업손실을 보이는 등 올해 적자폭이 2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8월 전기요금을 평균 4.9% 인상했지만 여전히 요금이 원가에 미치지 못한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 지경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등에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는) ‘요금전선’에 서 있는 건 한전이 아니라 지경부”라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책임도 안 지는 사외이사 몇 명이 요금 인상을 의결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지경부는 “10%대 인상안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라며 “이사회 신청을 반려하든지 심의 후 되돌려 보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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