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요즘 중학생들 “공부? 관심 없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8일 03시 00분


고입 선발시험 폐지, 대입은 먼 훗날 얘기…
공부해야 할 뚜렷한 단기목표 없어… 객관적 실력 알지 못해 ‘위기감 상실’


《중2 이모 군(15·서울 서초구)은 공부에 큰 욕심이 없다. 학교수업 때는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교과서에 낙서하기 일쑤. 일주일에 세 번 가는 학원에서도 매번 맨 뒷자리에 앉아 몰래 만화책을 읽는다. 이 군이 책상 앞에 하루 4시간 이상 앉아있는 일은 일 년에 딱 네 번. 중간·기말고사가 코앞에 닥쳤을 때뿐이다. 내신 성적은 반 10등 안팎. 그래도 이 군은 자신의 성적에 만족한다. ‘고교 때 이 정도 성적만 유지하면 서울시내 대학 진학은 문제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군은 부모의 걱정을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가서 열심히 하면 되지. 중학교 때부터 힘을 뺄 이유가 전혀 없잖아.’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요즘 중학생들, ‘공부 열정’이 사라지고 있다. 일부 중하위권 학생들은 성적에도 별 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낮은 점수에도 아쉬워만 할 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최근엔 자기주도 학습을 핑계로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학생들도 적잖다.

공부 열정이 예전 같지 않기는 최상위권 중학생도 마찬가지. 공부 잘하는 일부 중학생들은 중간·기말고사 때만 국어 영어 수학 위주로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특수목적고 및 자율형사립고 입시에 학교 내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꼭 필요한 공부만 하겠다는 심산이다.

공부 열정을 잃은 요즘 중학생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 중학생, ‘눈앞의 목표’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뚜렷한 단기 목표로 삼을 만한 ‘무언가’가 없다는 점. 중학생들에게 대입은 길게는 6년이나 남은 먼 훗날의 얘기. 이런 이유로 대부분 중학생들이 ‘공부는 고교 진학 후부터 해도 충분하다’고 안이하게 생각한다.

중학생들에게 단기적인 목표는 학업 의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습관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탓에 이들에겐 코앞에 닥친 시험이 공부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부 교육전문가들은 “특목고 및 자율고 입시에 자기주도학습전형이 도입됨에 따라 고교별 선발시험이 폐지된 것도 중학생들의 공부의지가 하향평준화 된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불과 2, 3년 전까지 최상위권 중학생들은 중학 3년 내내 오로지 공부에 ‘올인’(다걸기) 해야 했다. 어려운 고교별 선발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였다. 또 합격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토플, 토익, 올림피아드 등 각종 전국 규모 교외대회에 수시로 도전했다. 과열이 문제이긴 했지만 이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중학생들의 전체 학습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엔 최상위권 중학생들조차 중간·기말고사 때만 바짝 집중해 공부한다. 또 교외 대회에 무리하게 도전할 이유도 사라졌다. 즉, 중학생들에겐 당장 ‘열공’(‘열심히 공부한다’의 줄임말)해야 할 단기적이고 현실적인 목표가 없는 셈이다.

서울 강남지역의 한 중학교 교장은 “요즘엔 최상위권 학생들도 전략적으로 국어 영어 수학만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이 확연히 줄어든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공부에 대한 ‘긴장감 저하’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중학생, ‘위기의식’이 사라지다!

대부분 중학생들이 공부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객관적인 학업수준을 체감할 기회가 없기 때문. 대부분 학생과 학부모는 오로지 내신 점수만으로 “이 정도면 ‘인 서울(in Seoul) 대학’엔 무리 없이 진학할 거야”라고 안이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올해 대학입시를 예로 들어보자. 2012학년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신입생 선발인원은 1만242명. 이중 정시모집 인원은 전체의 31.6%에 해당하는 3232명뿐이다. 한편 전국의 특목고(외고, 국제고, 과학고, 영재학교) 및 전국단위 자율고 한 학년 정원은 약 1만3400명. 특목고·자율고 학생들의 학업성취수준이 대체로 일반계고보다 높다고 가정했을 때 일반계고 전교 1등 학생이라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 일반계고에서 웬만큼 해서는 서울시내 대학 진학도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일부 학부모들은 “중학교 때부터 전국단위 시험을 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학생 자녀가 고교 진학 후 처음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좌절하거나 아예 공부를 포기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고2 딸을 둔 어머니 윤모 씨(41·서울 강남구)는 지난해 학기 초 큰 충격을 받았다. 딸이 고교 진학 후 처음으로 치른 전국단위 모의고사에서 매우 낮은 성적을 받은 것. 평소 딸이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중간정도는 유지할 거라 굳게 믿었던 터라 충격은 더했다.

윤 씨는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했지만 중학교 시절 기본기를 탄탄하게 쌓지 못한 탓에 하위권에서 맴돌다가 한계를 느끼고 지금은 포기상태에 이르렀다”고 푸념했다. 윤 씨는 “중학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때부터 자녀의 객관적인 실력을 파악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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