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저축銀 사태’ 이렇게 풀자]<上>금융당국 때리기가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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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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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비리 엄단하되 감독기능까지 흔들어선 안돼

부산저축은행그룹 부실 감독 파문으로 금융감독원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4일 직원 자살 사건까지 발생하자 금감원 직원들은 “일을 하기가 두렵다. 무기력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숨진 직원이 근무하던 금감원 부산지원은 아직까지 침통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부산저축은행그룹 부실 감독 파문으로 금융감독원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4일 직원 자살 사건까지 발생하자 금감원 직원들은 “일을 하기가 두렵다. 무기력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숨진 직원이 근무하던 금감원 부산지원은 아직까지 침통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저축은행 부실 감독과 일부 직원 비리의 ‘후폭풍’으로 시장 안정의 최후 보루인 금융감독원이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금감원 임직원들은 거세게 휘몰아치는 외풍에 전전긍긍하며 바짝 엎드려 있는 상황이다. 8일 금감원 사무실에는 출근한 직원이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일손을 놓은 상태였다. 금감원의 한 간부는 “비리 문제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면 업무공백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의 탈·불법과 감독 기능을 악용한 부정부패 등 금감원의 책임은 엄정하게 가려야 하지만 금감원의 기능 자체는 조속히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 저축은행은 영업정지시킬 수 있어도 금융시스템 안정을 책임지는 감독 기능은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감독 기능 무력화 우려


금융당국의 무력감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저축은행업계에서 ‘우량 회사’로 부러움을 받는 제일저축은행의 예금인출 사태(뱅크런)는 힘 빠진 금융당국의 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제일저축은행은 3일 임직원이 대출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극심한 예금인출 사태로 몸살을 앓았다. 금융위원회, 금감원 관계자들은 4일 “임직원 개인 비리 사건일 뿐”이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예금주들은 “이명박 대통령마저 불신하는 저축은행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외면하면서 6일까지 3000억 원에 가까운 예금을 인출했다. 한 저축은행장은 “지금처럼 금융당국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 조그만 악재에도 파산하는 저축은행이 줄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금융검사의 최전방을 지키는 금감원 임직원의 불안감이 증폭될 경우 금감원의 기능 자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진행되는 각종 금융검사나 감독이 부실해지면 그 후유증은 몇 년 뒤 ‘제2, 제3의 부산저축은행’으로 돌아올 수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저축은행 구조조정 외에도 가계부채 연착륙, 은행전산망 안전성 확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등 처리해야 할 굵직한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저축은행만 하더라도 하반기 추가 구조조정 등 해야 할 업무가 산적해 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금감원 임직원들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신한은행 감사로 내정됐다가 스스로 사의를 표명한 이석근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비리가 발견된 직원은 일벌백계하고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지 무작정 때리는 것은 실익이 없다”며 “최근 혼란한 와중에 감독과 검사의 ‘사각지대’가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 금융당국 수장에게도 힘 실어줘야


국무총리실이 주도한 금감원 개혁을 위한 태스크포스(TF)의 활동 못잖게 금융당국의 자구노력에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감원이 최근 잇따라 내놓은 쇄신방안이 뒤늦은 감이 있지만 방향은 옳은 만큼 자체 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1월과 3월에 각각 취임한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감원장 등은 전임자들이 수수방관하던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착수해 부산저축은행이라는 환부를 도려내는 데 기여한 만큼 금융당국의 면모를 일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두 금융당국 수장(首長)은 국무총리실이 주도하는 금감원 개혁 태스크포스(TF)팀에서 배제될 개연성이 큰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6일 TF팀 구성과 관련된 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겠다고 공지했다가 국무총리실의 반대로 취소했고, 권 원장은 TF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한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금감원의 구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지만 개혁을 추진하려던 수장들까지 ‘개혁 대상’으로 봐선 안 된다”며 “총리실 TF팀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두 수장의 노하우를 활용해야 하며 최소한 이들 두 수장의 의견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금융감독 체계 대수술 기회로


금감원 개혁의 주도권은 총리실 TF팀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TF의 과제는 ‘금감원 때리기’보다는 금융감독 기능을 조속히 정상화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특히 금감원이 사실상 독점해온 검사권한을 분산해 검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게 TF팀이 추진할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기관을 합쳐 현재의 금감원을 만든 것처럼 지금까지의 부작용을 점검해 금융감독 체계 전반을 되돌아볼 절호의 기회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관 이기주의’가 되풀이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검사권 나눠먹기가 아니라 금융감독 의사결정 구조를 재점검하고 금융위, 금감원,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유관기관의 기능이 효율적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감원이 잘못했으니 감독권을 정부가 회수하자는 ‘관치’적 발상이나 감독권을 대충 유관기관끼리 나눠먹는 식의 해법은 곤란하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시감독권, 위기감독권, 체계적 위기 발생 시 감독권 등을 어떻게 정리할지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꼼꼼히 따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 출신 금융기관 감사들의 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이석근 전 금감원 부원장보가 6일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대신증권 감사로 내정됐던 윤석남 전 금감원 회계서비스2국장도 8일 물러나겠다는 뜻을 대신증권 측에 전달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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