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저축銀 사태’ 이렇게 풀자]<中>서민금융 모델 재설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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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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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새끼’로 변한 저축은행을
지역고객 밀착형 ‘제2 지방은행’으로

“도저히 금융기관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검찰 관계자가 이달 초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 사건 수사 결과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지만, 실제로 부산저축은행은 저축은행이라는 간판만 내걸었지 서민금융이라는 본래 역할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쳤다. 서민 돈을 끌어 모아 고위험 고수익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다 걸기(올인)’하면서 대주주의 사익만 챙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PF 부실은 부산저축은행에서 극단적인 모습으로 표출됐지만 다른 저축은행에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눈엣가시 같은 문제다. 서민금융시스템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저축은행이 붕괴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저축은행의 주요 고객인 신용등급 5∼9등급 계층이 의지할 곳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은 단순히 PF 부실을 털어내는 수준을 넘어 서민금융모델을 재설계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먹을거리 잃은 저축은행

저축은행 사태의 1차적 원인은 저축은행 대주주의 ‘탐욕’에 있었다. 저축은행들이 본업인 서민금융을 등한시하고 부동산 PF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작년 말 현재 저축은행의 총 대출에서 PF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1%로 은행권(3.2%)보다 6배 많다. 부동산경기가 좋을 때는 단기간에 고수익을 가져다주던 ‘효자’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저축은행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저축은행에 돌리기도 어렵다. 정부가 부실저축은행 대책으로 내놓은 정책들이 서민금융기관의 정체성과 배치되는 측면이 컸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부실 저축은행을 우량 저축은행에 떠넘기는 대형화 정책은 저축은행의 위험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 됐다. 대형화된 저축은행의 덩치가 웬만한 지방은행 수준으로 커지고, 은행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계층을 대상으로 소액신용대출에 나서면서 1금융권과 2금융권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졌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대형 은행과 대기업들의 카드사들이 4∼5%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28%대의 카드론 대출을 하고 있다”며 “급전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저축은행의 영역에 은행과 대기업이 뛰어들다 보니 저축은행이 갈 곳이 없어 PF로 몰린 것”이라고 말했다. 저신용 등급 대상 영업에서는 햇살론, 미소금융, 새희망홀씨 등 정책서민금융상품에 치이고 있다. 햇살론 정도만 저축은행이 취급할 뿐 나머지는 은행을 통해 대출이 이뤄진다. PF에서 손을 떼고 서민금융이라는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해도 설 자리가 없는 처지로 몰린 것이다.

○ 서민금융 본연의 업무를 찾아야

저축은행의 ‘제 자리 찾기’가 이뤄지지 못하면 저축은행은 ‘미운 오리 새끼’로 남아 금융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교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은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3월 17일 ‘저축은행 경영 건전화를 위한 감독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경쟁력 강화 방안’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나도록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부실 감독으로 뭇매를 맞으면서 저축은행에 ‘당근’을 주기 힘든 상황으로 몰린 탓이다.

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을 지역 고객에게 밀착하는 ‘제2의 지방은행’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처럼 일정 지역을 벗어나 전방위적으로 PF 투자를 벌이지 않고 좁은 지역의 서민 금융에 깊숙하게 파고들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찬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축은행이 서민금융에 집중할 수 있도록 ‘6등급 이하 서민에게 전체 대출의 10%를 하라’는 식으로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저축은행이 지역사회를 직접 발로 뛰며 우량한 서민 고객을 유치하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중은행, 저축은행, 협동조합, 대부업체 등 각각 다른 신용등급의 고객을 가진 금융기관들이 서민금융의 영역을 체계적으로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시중은행과 자본력이 강한 카드회사들이 서민금융시장에 치고 들어와 저축은행의 수익 모델이 없어지는 게 문제”라며 “저축은행 영역을 침범한 할부금융사, 카드사들의 영업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시중은행, 카드사들의 취급상품이나 영업 구역을 저축은행과 가급적 겹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서민금융에 특화된 사업모델을 추구하는 서민금융기관들이 중장기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며 “제도권 서민금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고 대체수익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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