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세계大백제전]일본 속의 백제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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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왕실 제사 춤사위에도 백제 흔적 완연 서기 503년 고대 백제 무령왕이 일본 나라(奈良) 현 오시사카(忍坂)궁의 친아우 오호도 왕자(후에 게이타이 일왕이 됨)에게 청동거울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을 보냈다. 현재 국보로 지정돼 있는 이 거울의 둘레에는 ‘사마(斯麻·무령왕의 이름)’가 아우의 장수를 빌며 이 거울을 보낸다는 형의 애틋한 마음을 담은 명문(銘文) 48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일부 일본 학자들은 60년에 한 번 돌아오는 간지(干支) 연대를 왜곡까지 해가며 거울을 보낸 시기를 383년으로 낮춰 무령왕의 청동거울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렸다. 이 논란은 1971년 공주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의 묘지석에서 ‘사마’라는 무령왕의 휘(諱)가 발견돼 일단락됐다.

백제인의 문화 발자취는 일본 유물에도 생생히 남아 있다. 2년 전 미국 보스턴박물관에 가서 백제의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살펴본 적이 있다. 이 백제 칼은 오사카(大阪)에 있는 백제계 닌토쿠(仁德) 왕(4C) 무덤의 도굴품. 1872년 홍수 때 도굴당한 것이 미국 상인의 손에 넘어가 이 박물관에 와있다. 도쿄대 이노우에 미쓰사타(井上光貞) 교수는 이 환두대도가 남조선의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이 칼 손잡이의 화려한 금장식에 양각된 ‘삼족오(三足烏)’에 주목했다. 삼족오는 상고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해의 신(日神)’의 상징이었다. 그 삼족오는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백제 ‘환두대도’의 손잡이에도 양각돼 있다. 평남 용강의 고구려 고분 쌍영총(5∼6C) 전실(前室) 천장에 그려진 그림 속에도 또렷하다. 삼족오가 우리 민족의 새라는 것은 이미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그런 삼족오가 1989년 지금의 일본 아키히토(明仁) 왕이 등극할 때 입은 붉은 큰저고리 왼쪽 어깨 위에 수 놓여 있었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날 일왕은 그 옷을 입고 일본왕실 큰사당에서 대상제(大嘗祭) 천신(天神) 제사를 올렸다. 일본의 황국신도가들은 삼족오를 그들의 천신이 하늘에서 빛을 밝혀주는 ‘야타 가라스’(여덟 치 까마귀)라 주장해 왔다. 이런 논거를 토대로 일본축구협회도 덩달아 삼족오를 일본 축구의 심벌 마크로 쓴다. 일왕의 대상제 천신 제사의 축문 제목은 ‘가라카미(韓神)’이다. 이른바 ‘조선신’이다. 일본 고대사의 태두(泰斗)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박사는 연구 논문에서 여러 차례 가라카미를 조선신이라고 단정했고 필자에게도 자주 그렇게 말했다. 2002년 7월 11일에 필자는 도쿄의 왕궁 안에서 일왕을 수반하며 제사를 진행하는 아베 스에마사(安倍季昌) 담당관으로부터 직접 가라카미 축문을 읽는 제사를 확인했다. 일본 왕실 제사에서 ‘한신인장무(韓神人長舞)’라는 제사춤도 춘다. 우에다 박사는 일본왕실 족보(필사본) 책자를 필자에게 보여주며 “30대 비타쓰 일왕은 백제 왕족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이런 일련의 사실을 보면 오늘날의 일본 한류(韓流)의 뿌리가 고대 조선신인 한신(韓神)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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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의 일이다. 일본 사쿠라이 시에 있는 큰 사당인 오미와(大神) 신사에 갔었다. 이곳 사당에서 모시는 신주는 백제신인 ‘대국주신(大國主神)’이다. 이는 일본지명의 어원을 밝힌 책에도 나온다. 이 신사에는 후백제 견훤왕의 탄생 설화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처녀와 밤마다 큰지렁이(地龍)로 변신하여 밀통한 청년에 의해 태어난 아기가 뒷날 견훤왕이 되었다”는 ‘삼국유사’의 설화와 똑같다. 다만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지렁이가 뱀으로 바뀌어 있다. 일본의 역사를 파면 팔수록 ‘백제’가 나온다.

필자: 홍 윤 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석좌교수.
‘일본 속의 백제, 구다라’의 저자. 전 외국어대 교수. 전 충남도지사 백제사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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