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번호판 애용자는 고소득 전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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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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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내면 꺾이고… LED로 교란 작전…과속 단속카메라 조롱

서울지방경찰청이 10일 자동차 번호판 조작 기기를 제조 판매한 조직을 적발하고 관련 증거물을 공개했다. 경찰청 관계자가 ‘꺾기식 번호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원대연 기자
서울지방경찰청이 10일 자동차 번호판 조작 기기를 제조 판매한 조직을 적발하고 관련 증거물을 공개했다. 경찰청 관계자가 ‘꺾기식 번호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원대연 기자
은행원 박모 씨(40)는 2008년 11월 회사를 그만두고 1억5000만 원을 들여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자동차 번호판 제조회사를 차렸다. 박 씨의 번호판은 차량 안에 설치한 단추를 누르면 번호판 위에서 검은 천이 내려와 숫자를 덮도록 만든 불법개조 번호판이었다. 박 씨는 “연예인 등 차량 이동 시 사생활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라며 특허출원했고 곧 인가를 받았다. 순식간에 ‘특허 번호판’으로 돌변한 이 제품은 인터넷 카페와 자동차전문지에 “사생활 보호 번호판 ‘멀티가드’”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광고도 나가고 개당 20만∼30만 원에 불티나게 팔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불법 개조한 자동차 번호판을 판매한 12명과 이를 구매한 118명을 자동차관리법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박 씨 등 공급자 일부는 불법 개조 번호판을 제조 판매한 행위만으로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불법개조 번호판에 다양한 명목을 붙여 특허등록까지 했다. 현행법은 불법 번호판을 사용한 행위만 처벌하고 있어 경찰은 박 씨 등 공급자를 불법 번호판 사용자와 공범으로 입건했다.

적발된 12명이 판매·유통한 번호판들은 그 아이디어만은 ‘특허급’이었다. 검은 천 덮개가 내려오는 일명 ‘자동 스크린가드’ 외에도 빨리 달리면 번호판이 범퍼 밑으로 꺾이는 ‘꺾기식 번호판’, 차량 안 작동단추를 누르면 번호판 자체가 180도 회전하도록 만든 ‘전동회전 번호판’, 이동식 카메라의 레이저를 교란해 측정 속도를 0으로 나오게끔 하는 ‘잼머’, 카메라의 자동초점을 흐리게 만들어 이동카메라 촬영을 무력화하는 ‘위저드’까지 기존에 알려진 ‘반사 스프레이’나 ‘반사필름’ 외에 다양했다.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와 대포폰으로 주문을 받았고, 고속버스 택배로 제품을 전달하는 등 판매수법도 지능적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의사, 약사, 기업 간부, 목사 등 구입한 사람 중 많은 수가 고소득 전문직이거나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직종이었다”라고 말했다. 번호판 주변에 강력한 빛이 나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부착해 숫자를 순간적으로 안 보이게 하는 ‘일지매 번호판’을 구입한 치과의사 홍모 씨(45)는 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니면서 과속 등 상습 교통법규 위반으로 10회 이상 적발된 전력이 있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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