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리와 사고]논증평가의 최고 ‘교재’

  • 입력 2008년 6월 2일 02시 57분


법학적성시험(LEET) 예비시험 논술 두 번째 문항에는 ‘논증 평가형’ 문제가 배치돼 있습니다. 논증 평가형 문제는 주어진 지문을 다른 글을 활용해 평가하거나 다른 글의 관점에서 비판해보는 유형입니다. ‘제시문 (나)와 (다)를 각각 활용하여 제시문 (가)의 주장을 비판하시오’(예비시험 기출문제), ‘글 (다)의 관점에서 글 (라)의 살비아티의 주장을 평가하라’(예비시험 설명자료)와 같은 문제가 출제될 수 있습니다. 평가해야 할 글만 주고 자신의 입장에서 해당 글의 논증을 평가하는 문제도 나올 수 있습니다.

평가를 위해 주어지는 다른 글은 1개 또는 2개가 제시될 수 있습니다. 다른 글이 여러 개 나올수록 어렵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파악해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두 글 사이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비시험 문제처럼 ‘각각 활용하라’고 하면 두 글이 어떻게 서로 다른 비판을 제시할 수 있는지, 두 비판 사이의 관계가 어떠한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다른 예로 두 제시문을 ‘함께 활용하여’ 비판하라고 한다면 두 제시문이 어떤 관계에서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두 번째 문항에 반드시 ‘논증 평가형’ 문제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평가나 비판 없이 단순히 논증을 분석하고, 거기에서 다른 내용을 추론해 내도록 하는 형태의 문제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시문 (마)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제시문 (바)로부터 어떤 주장을 추론할 수 있다. 이 주장을 논증의 형태로 구성하라’(예비시험 설명자료)와 같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분석, 추론하는 과정은 논증을 평가하는 과정에 이미 전제되어 있거나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논증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논증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을 읽을 때에는 ‘대화하듯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수동적 독서에서 그치게 됩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논증들에 대하여 스스로 반론을 제기해 보고, 그 반론에 대하여 글쓴이의 입장에서 또다시 반박하는 방법을 찾아보면서 글을 읽어야 합니다.

전제로부터 결론으로의 이행 과정에 대해 비판하는 토론을 자주 하고 이를 글로 써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논쟁적 토론은 그 자체가 논증 평가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주 할수록 좋습니다. 또한 논술은 글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읽고 토론한 과정을 정리해 글로 써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공부할 거리를 찾고 싶은 학생들은 각 학문 영역에서 이루어진 유명하고 고전적인 논쟁들을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각 영역에서 중요한 쟁점에 대한 이론적 논쟁들은 서로 상대의 논증을 비판하면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이런 논쟁들을 많이 다뤄보면 논증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저절로 향상됩니다. 무엇보다 철학은 각 학문영역에서 원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쟁점들을 모아 하나씩 다루는 ‘논쟁 백화점’ 같은 학문이므로 대학생활 동안 철학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특히 도움이 됩니다. 로스쿨을 염두에 두고 있는 고등학생의 경우도 논술 공부와 더불어 철학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고전적 논쟁들을 공부할 때에는 두 가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우선 고전적 논쟁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논증 평가 및 비판 방법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반론은 논증의 근본 가정을 인정하고 반론하지만 어떤 반론은 논증의 근본 가정까지 포함해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반론은 강력한 반례를 보여줌으로써 논증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반론 제기 방식들에 주목함으로써 다양한 논쟁에서 다양한 형태의 반론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그 논쟁의 내용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LEET 논술에서 논증 평가형 문항은 단순히 기술적 능력만을 측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성된 가벼운 제시문보다는 고전적인 논쟁을 배경으로 하는 묵직한 제시문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비시험의 경우에도 포퍼의 ‘반증이론’에 대한 고전적인 비판이 담겨있는 제시문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각 학문 영역의 고전적 논쟁을 많이 다루어 보면 출제된 제시문을 빨리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입 논술 기출 문제 중 유사 문제를 활용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입 논술 문제 중에 제시문을 평가하고 비판하게 하는 문제는 흔히 찾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중 논증적 텍스트에 대한 논리적 비판을 요구하는 문제들을 선택해서 풀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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