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자식에 버림받은 '독거노인'들의 기막힌 사연

  • 입력 2006년 7월 22일 12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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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89·서울 송파구) 할머니는 10년 전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 큰 아들과 함께 살았다. 다른 아들, 딸은 생활에 쫓기면서 서로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하지만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 큰 아들과의 인연도 끊어졌다. 일하면서 할머니를 돌볼 수 없었던 아들이 집을 나간 뒤 연락을 끊은 것. 최 할머니가 모든 자녀들과 연락이 단절된 지는 올해로 10년째. 지금은 그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다.

혼자 남겨진 할머니는 거리를 헤매다 복지관 관계자의 눈에 띄었고 지금은 2평짜리 쪽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인근 사설복지관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끼니를 잇고 있다.

이제 최 할머니가 인간답게 생을 마칠 수 있는 희망은 노인요양시설뿐이다. 하지만 시설 입소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바로 ‘돈’이다.

최 할머니의 경우 호적상 자녀가 있어 정부보조금이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최 할머니가 시설 입소를 위해서는 진단서가 필요하지만, 발급비용을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CT촬영비 15만원과 진단서 발급비용 4만원이 필요하다. 무일푼인 할머니에게는 너무 큰 돈이다.

의료보호 1종대상자라면 무료 촬영이 가능하지만 할머니에게 그런 혜택은 그림의 떡이다. 자녀들이 호적에 올라 있기 때문.

복지관 관계자는 “노동력을 상실한 독거노인의 빈곤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들에게 15만 원은 부담할 수 없는 큰 금액”이라며 “최 할머니에게 1만원은 한 달 반찬값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모(80·서울 강서구) 할머니는 자녀가 없다. 남편이 죽고 난 뒤부터 줄곧 혼자서 살았다. 몇 년 전부터 기억력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치매로 발전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 중풍까지 찾아왔다.

돌볼 자녀가 없기 때문에 노인요양시설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노동을 할 수 없는 김 할머니도 비용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시설 입소를 포기했다.

서모(78·서울 성북구) 할머니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 서 할머니도 몇 년 전 가족에게 버림받은 이후 지금껏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적상 자녀가 있어 정부보조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담당 복지관 관계자는 “할머니에게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들과 혼자된 딸이 있지만 연락이 안 된다”며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는데 또 그 자식들 때문에 시설에서도 버림받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해결책 둘러싸고 정부당국과 복지 관계자 이견

최근 ‘돈’ 때문에 치매나 병에 걸린 독거 및 장애 노인들이 가족에게 버림받고, 요양시설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딱한’ 사례가 늘고 있다.

버림받은 노인들의 경우 대부분 자녀들과 연락이 끊긴 상태고, 호적에 자녀가 있어 정부보호를 못 받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보호를 받게 되더라도 생활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 독거노인의 경우 정부수급권자가 되면 월 30만 원 안팎의 정부보조금을 받는다. 그러나 월세 10~20만 원, 수도요금, 전기세 등 고정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먹고 살기도 빠듯한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설 입소를 위한 ‘진단서 발급과 CT촬영 비용’을 감당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복지관 관계자는 “정부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에게 의료보험 혜택이나 국가지원이 필요하다. 시설에 입소할 비용을 줄여주거나 정부에서 대신 내줘야 한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CT촬영과 진단서 비용과 관련해 “CT촬영 금액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요구하는 대로 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CT촬영에 의료보험을 적용하면 일반인들도 많이 찍게 돼 재정 감당이 안 된다”며 “ 때문에 진찰을 목적으로 하는 CT촬영은 의료보험 적용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현 정책이 유지되는 한 무의탁 치매 노인이나 중증 장애 노인이 전문요양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셈이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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