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技막힌 기능한국]“金메달 따고도 통닭 배달해요”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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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제36회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기능올림픽 목공 분야에서 금메달을 따낸 인승호(24) 씨.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팔자가 필 것”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인 씨는 요즘 낮에는 토익 공부, 밤에는 통닭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목공 도구를 놓은 지 오래다.》

인 씨는 부모님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1998년 실업계 고교에 진학했다. “장학금도 받을 수 있고 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취업도 보장된다”는 교사의 권유에 기능반을 자원했다.

고교 졸업 후에도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인생을 걸었고 마침내 감격의 순간을 맞았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고졸이기 때문에 지원 자격이 안 된다”는 기업들의 냉대였다.

기능올림픽 수상자는 동일 업종에 3년 이상 근무하면 병역특례 혜택을 받는다. 인 씨는 취업이 되지 않자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늘리기 위해 2002학년도 대학 수시모집에서 기능올림픽 수상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모 대학 건축공학과에 진학했다.

인 씨는 “전공과 전혀 무관한 대학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세계 1위를 하고도 전공을 살릴 수 없으니 허탈할 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의 거듭된 이공계 인력 육성 약속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기능 및 기술 인력들이 취업을 못하거나 기대 이하의 대우를 견디지 못해 직종을 바꾸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 정책이 국내 산업의 수요나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한 실적 위주의 전시 행정으로 흐르는 데다 이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능·기술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홀대와 정부의 무관심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인 제조업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철골구조물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용접 등 이른바 3D 업종은 외국인 근로자가 전담하고 있다”며 “이들이 어떤 이유로든 한꺼번에 떠날 경우 국내 제조업 기반이 통째로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인들의 우려는 기능·기술인을 양성하는 교육현장에서부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교육인적자원부 국감 자료에 따르면 실업계 고교생은 1995년 91만1000여 명에서 올해 50여만 명으로 급감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학 진학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기능 관련 국제대회에서 한국선수단을 8차례나 이끌었던 서승직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는 “숙련된 기능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본”이라며 “자기 손으로 만든 기계로 제품을 만드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산업경쟁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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