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EU와 잘못 닮은 한국 노동시장

  • 입력 2005년 3월 2일 18시 06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성장을 위한 정책 제언’ 보고서에서 “한국은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 비용을 줄여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1998년 이후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집단해고가 허용됐지만 해고를 어렵게 하는 규제가 여전히 많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비정규직 확대, 청년실업의 만성적 증가, 성장잠재력의 하락이 이와 무관하지 않으며 결국 다수 국민에게 경제적 고통을 안기고 있다.

보고서는 1990년대 이후 유럽연합(EU)이 미국을 따라잡기는커녕 더 벌어지는 소득격차에 허덕이는 것도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한 노동생산성 저하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EU가 미국에 근접하게 성장하고 일자리를 늘리려면 산별(産別) 임금협상, 고용보호, 최저임금 등에서 기업 입장을 더 배려하는 쪽으로 노동시장을 개혁하라”고 충고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3년 말 현재 미국의 70∼75%에 그치는 EU가 더 큰 격차를 면할 수 없다는 예측이다.

닮은꼴의 충고이지만 EU와 한국의 대응에는 차이가 크다. 독일은 2003년부터 ‘어젠다 2010’ 정책에 따라 실업급여 기간을 대폭 줄이고 소기업에 대해선 부당해고 금지규정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펴오고 있다. 프랑스도 주당 35시간 근무제를 폐지하고 48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 이상인 독일과 프랑스도 성장을 위해 이렇게 바뀌는데 한국은 아직도 두 손 놓고 있는 꼴이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두고 입씨름하기 바빴지, 노동시장 유연화에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노(勞)와 사(使)가 함께 살아남기 어렵다. 경제를 살리는 데 시간도 많지 않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