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의원의 공개서한에 대한 답신

  • 입력 2005년 1월 27일 16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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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의원에게!

문화재청장 유홍준

어젯 밤(26일) 김의원이 내게, 공개 “연애편지”를 보냈다는 전화를 받았으나 월례 확대간부회의를 하느라 이제 늦게 답장을 보냅니다.

우선 40년 우정을 잊지 않고 애정어린 비판을 해준 것에 고맙다는 인사말을 올립니다.

김의원이 잘 알 듯이 나는 이제까지 내 전공 하나만을 지키며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학생 때 삼선개헌 반대 데모를 하고 유신헌법 철폐, 긴급조치에 반대했던 것은 어떤 정치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 행동한 것 그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내 스스로의 꿈이라면 ‘지조있는 학자’, ‘양심있는 文士’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문화재청장 직을 수락하고 공직에 들어 온 것 역시 그런 삶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현판 교체 역시 그런 맥락 속에 있습니다. 많은 부분이 언론에 왜곡되어 보도 되었는데 그 점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광화문 현판 교체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1995년 경복궁 복원 계획 속에 들어 있던 것으로 2003년도 공청회도 거친 사항입니다. 다만 그것이 “뜨거운 감자”여서 누구도 잘 건드리지 않고 미루어져 온 사안입니다.

그런데 올 8.15 광복 60주년 행사가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서 열리게 될 예정이어서 불가피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왜 정조글씨냐는 정말 오해입니다. 정조글씨로 교체하는 것은 여러 안(案) 중 하나입니다.

광화문의 옛 현판이 없으므로 고궁(故宮)의 격에 맞추려면 ①현역 대표 서예가의 글씨, ②조선왕조의 대표적 서예가의 글씨 집자 ③임금님 글씨 즉 어필(御筆) 중 하나 등 세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중 현역 대표 서예가는 여초 김응현 선생인데 현재 병중에 계시고, 명필 글씨는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 글씨를 집자해 만들고 있습니다. 어필이 문제인데, 아시다시피 임금님들은 글씨를 많이 남기지 않아 光化門 세글자의 집자 가능한 분은 정조대왕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훈민정음 집자도 고려했으나 집자에 실패하였습니다. 정조는 경복궁과 인연이 없으나 조선왕조의 명군(名君)이고 글씨도 품격이 있어 어필 안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화문 새 현판은 이상의 3가지안(한석봉 집자, 추사체 집자, 어필(정조)집자)를 갖고 오는 3월 문화재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심의하여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언론은 내가 노대통령을 정조와 비교했던 일을 연상하며 나를 ‘아부쟁이’ 내지 ‘어용학자’로 몰고 있습니다마는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노대통령에게 정조를 말한 것도 참여정부가 개혁을 기치로 내걸면서 정조 같은 역사적 사례(실패까지 포함)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와 “진짜 개혁을 하시려면 정조를 통해 개혁을 배우십시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관계 저서까지 사서 보낸 것입니다.

김형오의원! 아시다시피 내가 누구에게 아부하는 것 보았습니까? 그걸 할 줄 몰라 길바닥에서 10여년을 백수로 지낸 시절이 있음을 잘 알지 않습니까.

또 내가 뭐가 아쉬워서 대통령에게 아부를 합니까. 아부를 하려면 대통령이 내게 일 잘해달라고 부탁을 해야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광화문을 “대표적인 중심대로의 현판”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와의 시각 차이는 여기서 생긴 것 같습니다. 광화문은 정확히 말해서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정문(正門)입니다. 결코 대로변의 현판이 아닙니다. 즉 경복궁의 얼굴입니다.

경복궁의 복원은 2009년까지 약 45% 복원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하나씩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여 지금은 대장금이 근무했던 소주방을 복원하고 있고 경회루의 보조 울담도 쌓고 있습니다.

그런 복원계획의 일환입니다. 저는 경복궁 복원을 책임 맡고 있는 문화재청장으로서 마땅히 할 일. 이미 결정해 놓고 그동안 미루어 온 일을 광복 60주년 행사장 관리인으로서 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끝으로 “어떤 경우라도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는 막아야 한다.”는 김의원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광화문은 결코 그런 맥락에서 볼 사안이 아닙니다.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는 아산 현충사, 이것은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입니다. 저는 이곳을 손보거나 현판을 떼내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아산 현충사에 이런 일을 했다면 그것은 씻지 못할 과오이고, 서투른 정치적 행위이며,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 작업이 된 지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의원! 광화문과 현충사는 다릅니다. 광화문은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입니다.

그리운 벗 김형오 의원! 35년전 대학 3학년때 무전여행 중 부산 영도의 아담한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며 자네 어머니가 손에 쥐어준 여비로 경부선 기차를 탔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 내가 받은 것은 무기정학 통보서였답니다. 그때 나는 눈을 감고 세상에 대해 스스로 맹세했습니다.

이 ‘빨간 증서’는 결코 부끄럽게 세상을 살아가지 말고 시대가 요구하는 ‘지조 있는 선비’의 길로 가자고.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을 따름입니다.

나의 현실 저항과 참여를 세상 사람들은 왜 자꾸 비속한 정치적 행위로 보려고 하는지 그게 서운합니다.

그 와중에 나의 본심을 잘 아는 자네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입니다.

내가 어떤 길을 가든 끝까지 애정어린 시각으로 보아주십시오.

감사. 감사합니다.

200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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