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어린이 신상공개 첫날…"이번엔 꼭 찾아야 하는데…"

입력 2003-06-05 18:29수정 2009-09-29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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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 한국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신상카드를 열람하며 울먹이고 있다.-안철민기자
“우리 도연이 꼭 찾아야 하는데, 이번에도 없으면 어떡하나….”

전국 아동보호시설에 있는 무연고 아동 3885명의 신상카드 열람이 시작된 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무교동 한국복지재단 회의실.

이날 휴가를 내고 아침 일찍 경남 마산시에서 온 김삼목(51) 박인숙씨(42) 부부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들 사진이 붙어 있는 카드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김씨 부부가 아들 도연군(19·정신지체1급)을 잃어버린 건 2001년 1월 29일.

당시 학원 선생님들과 함께 경주에 놀러간 도연군은 선생님들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사라졌다.


자기 이름조차 모르는 아들이 사라지는 바람에 가슴이 새카맣게 타버렸다는 김씨는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행사는 보건복지부가 전국의 인가 및 미인가 아동보호시설에 있는 무연고 아동의 신상정보를 모아 공개하기 위해서 마련됐다. 지난해 12월 경찰청이 800여명의 아동신상카드 열람 행사를 벌인 뒤 두 번째 행사인 셈. 아쉽게도 당시 행사에서는 잃어버린 아이를 찾은 부모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날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들이 복지재단의 작은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6년 전 딸 유정양(9)을 잃어버린 변영호씨(47·충남 연기군)는 “얼굴이 많이 변했을 텐데”라고 걱정하며 유정이 또래 여아의 사진이 나올 때마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맞벌이를 하는 변씨 부부는 둘째 유정이를 전남 영암군 부모님 댁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1997년 4월 5일, 할머니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방에서 낮잠을 자던 유정이가 사라졌다.

이후 변씨는 전국의 보육시설에 편지와 사진을 보내는 한편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를 직접 다니며 전단을 붙였다. 유정이 할머니는 충격과 죄책감으로 정신이 혼미해졌고 우울증에 시달렸다.

1989년 5월 18일 생후 8개월 된 딸 한소희양을 잃어버린 이자우씨(44·여·경기 수원시)는 이날 아동카드를 보며 손수건으로 연방 눈물을 훔쳤다.

당시 집에 들렀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30대 초반의 여성이 이씨가 잠깐 부엌에 간 사이 딸을 유괴해 갔다.

이후 심장병이 생긴 이씨는 혹시 하는 생각에 수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15년이 다 돼가지만 소희를 보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며 애를 태웠다.

“까치 우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어요. 요즘 유난히 까치가 많이 우는 게 왠지 곧 소희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눈물로 얼굴이 흠뻑 젖은 이씨는 애써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날 사무실 한쪽에서 부모들과 함께 카드를 살펴보던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대표(49)는 “정신병원이나 장애아동시설 등에는 실종된 아이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무연고 아이들의 신원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법안을 마련하고 미아 찾기 전담부서를 개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신상카드 열람은 복지재단 사무실(02-777-0182)을 방문하면 언제든 가능하다.

복지재단측은 무연고 아동들의 신상 정보를 계속 파악하는 한편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서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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