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이곳]'구마적'이원종이 자주가는 '전봇대집'

  • 입력 2002년 10월 15일 18시 26분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종로 주먹패 우두머리인 구마적 역을 열연한 이원종씨. 그가 싸고 편해서 즐겨찾는 종로2가 '전봇대집'에서 팬인 미군 마크 플크너(37)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다. - 김동주기자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종로 주먹패 우두머리인 구마적 역을 열연한 이원종씨. 그가 싸고 편해서 즐겨찾는 종로2가 '전봇대집'에서 팬인 미군 마크 플크너(37)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다. - 김동주기자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의 주무대인 서울 종로구 종로2가에서 ‘구마적’ 이원종씨(37)를 14일 오후 만났다.

구마적은 해방 전 종로 주먹패의 우두머리로 일본 깡패 하야시(이창훈)와 손을 잡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의리와 보스 기질로 인기가 높은 인물.

이씨에게 ‘부하’ 10명을 데려가도 부담 없이 한 턱 낼 수 있는 곳을 부탁했다.

“잘 아는 집이 한 군데 있는데 가보죠.”

100㎏의 육중한 체구에 어깨가 딱 벌어진 그는 굵은 목소리로 한마디 한 뒤 큼직한 두 손을 휘저으며 종로2가 ‘서피맛골’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는 가게 간판도 없는 허름한 판잣집 앞에 멈추더니 합판으로 된 문짝을 확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는 삶의 고민이 담긴 낙서가 가득했다. 주방 한 가운데에는 시꺼먼 전봇대가 홀로 자리를 지켰다.

44년 전 문을 연 이 집은 ‘전봇대집’ ‘종로 고갈비집’ ‘밀주집’ 등으로 통한다.

이씨가 이 집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6년 봄.

“두 번 재수한 끝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민주화 열기로 공부는 뒷전이었어요. 전세로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무슨 돈이 있었겠어요. 그래도 술은 먹어야 했고….”

그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종로 일대에서 최루탄을 마신 날은 항상 이 곳에서 오전 3, 4시까지 술을 마시며 ‘님을 위한 행진곡’ 등 운동가요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자리에 앉자마자 여주인 김애라씨(63)는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막걸리와 고갈비(고등어 갈비) 안주를 가져왔다.

“술은 막걸리만 팔고 안주는 고갈비가 유명하죠. 1990년 3월 제대하고 연극에 뛰어든 후에도 줄곧 이 곳을 찾아요. 가난한 연극배우가 돈 걱정 안하고 맘껏 먹을 만한 술집이 흔치 않거든요.”

이씨는 6개월 전에도 대학 연극동아리 ‘나루극회’ 친구 6명과 이 곳에 와서 배부르게 먹고 갔다고 말했다.

“아직도 종로 한 복판에 이렇게 싸고 편한 집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주인의 자녀가 대를 이으면 좋겠어요.”

이씨는 이 집 외에도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서울극장 등 종로 일대에서 개봉하는 날이면 종로 YMCA회관 옆 골목 안쪽에 위치한 ‘시골집’을 찾는다고 했다.

‘□’자로 된 전통 한옥을 개조한 마당 가운데 놓인 커다란 가마솥에서 끊여내는 장터국밥에 깍두기나 김치를 얹어 한술 뜨면 잃었던 입맛이 되살아나고, 연탄불에 구워내는 석쇠불고기도 일품이란다.

이씨는 헤어지면서 “비록 구마적이 김두한(안재모)에게 종로를 내주고 떠났지만 우두머리로서 의리와 사나이의 약속을 지키는 ‘멋’ 만큼은 계속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