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만에 만난 자매 폭우에 스러져가

  • 입력 2001년 7월 15일 23시 06분


'33년만에 만난 막내 동생과 하룻밤이라도 함께 지내고 싶다더니...' 가난 때문에 33년간 헤어져 살던 자매가 '살인적 폭우'로 짧은 만남을 추억하지도 못하고 스러져가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비극의 주인공은 오경자(48.여.미국 거주)씨와 김영자(40.여.서울 관악구 신림동)씨.

이들은 14일 밤과 15일 오전사이 서울.경기지방에 내린 기록적 폭우가 몰고온 엄청난 토사에 휩쓸려 신림시장내에 있는 김씨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김씨는 33년전 큰언니 오씨 및 오빠 오정권(43.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씨와 함께 전남 여수에서 부모님을 여의고 어렵게 살다가 가난때문에 다른 가정으로 입양됐다. 영자씨의 성이 오씨가 아닌 것도 바로 이때문.

달리 의지할 곳도 없는 경자씨와 정권씨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연락을 취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성장했지만 막내 영자씨는 이후 형제들과 연락이 끊겼다.

어느덧 마흔줄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동생 김씨의 일이 항상 마음에 걸렸던 정권씨는 결국 모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동생을 찾는다는 사연을 내보냈고, 하늘이 도왔던지 지난 5월 2일 남매는 극적으로 상봉할 수 있었다.

정권씨는 지난 87년 미군과 결혼, 미국에 건너가 살고 있던 누나 경자씨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경자씨 또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지난달 22일 귀국해 꿈에도 그리던 '3남매 상봉'이 33년만에 이뤄졌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딸들과 함께 파출부 일을 하며 반지하 단칸방에서 어렵게 사는 동생을 배려하느라 귀국 이후 정권씨 집에서 지냈던 경자씨는 귀국날짜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영자씨의 집에서 하룻밤만이라도 자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 14일 영자씨의 단칸방에서 동생과 함께 지난 세월을 얘기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동생과의 마지막 밤이었다. 엄청난 폭우에 몸을 실은 거대한 토사는 영자씨의 단칸방을 무참히 유린했고 이때문에 두 자매는 영자씨의 두 딸과 함께 다시는 올 수 없는 길을 갔다.

'여동생이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도와주지도 못해 평소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오빠 정권씨의 눈에는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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