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금지 위헌/의미-파장]"학교교육 다시 위축" 우려

  • 입력 2000년 4월 27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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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금지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내린 위헌 결정으로 교육계가 크게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어차피 대학생 과외가 일반화되어 있고 이번 전면 허용으로 공급자가 증가하면 시장 원리에 따라 과외 단가가 오히려 떨어질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없지 않지만 사교육비 시장이 더욱 팽창하고 학교 교육이 위축될 것으로 교육계는 우려하고 있다.

특히 유명 학원 강사 등에 의한 고액 과외도 합법화되어 자녀를 학원에 보낼 여유가 없는 많은 학부모에게 좌절감을 안겨 주고 ‘빈익빈 부익부’현상의 심화 및 사회 계층간 위화감 유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학원에서만 강의할 수 있는 유명 학원 강사들이 개인지도나 소그룹과외에 뛰어들면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의 고액 족집게 과외가 성행하고 일부 현직 교사가 과외 교사로 이탈할 경우 학교 교육이 공동화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헌재 결정의 이 같은 엄청난 파장에 비해 재판관들이 위헌 결정을 내린 법적 논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현행법의 ‘내용’과 ‘형식’이 모두 최고법인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이 요지다.

국가가 사회적 폐단을 막는다는 이유만으로 사교육까지 무차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것이 이번 결정의 핵심이다.

우선 헌재는 모든 과외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대학생 및 대학원생의 과외 등 예외적인 몇 가지만을 허용한 ‘네거티브(nagative)’적 법 형식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위헌의 근거로 부모의 교육권과 자녀의 인격형성권을 강조한 것은 과거의 ‘평등’ 이념보다는 개인의 ‘자유’라는 쪽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법조계는 평가한다.

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 헌재는 1년5개월 동안 장고(長考)를 거듭했다. 지난해 12월 ‘군필자 가산점제도’ 위헌 결정이 ‘남자와 여자’라는 대립 구도를 자극했다면 이번 결정은 사회내 ‘부유층’과 ‘서민층’간의 위화감을 자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

이 때문에 헌재는 99년 9월부터 실무팀을 구성하고 재판관 9명이 10여 차례 머리를 맞대고 격론을 벌이는 ‘평의(評議)’를 하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왔다.평의에서는 “전면 위헌 결정을 하면 ‘과외 망국’ 현상을 부추기고 혼란이 따를 수 있다”는 합헌론 또는 헌법불합치론과 “법이 헌법상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이상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법치주의와 국민을 위해 좋지 않다”는 위헌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헌재는 지난해 말 내부 평의를 거쳐 위헌 쪽으로 법률적인 가닥을 잡았으나 결정이 미칠 사회적 파장을 예상해 4개월 이상 선고를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주심인 한대현(韓大鉉)재판관과 정경식(鄭京植)재판관은 “사회적 파장과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끝까지 새 법을 만들 때까지는 한시적으로 기존 법의 효력을 유지하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또 이영모(李永模)재판관은 “현행법이 허용하는 과외교습으로도 학습이 부진한 학생이 이를 보충하는 데는 전혀 모자람이 없다”며 홀로 합헌 의견을 냈다.

그러나 위헌론에 가세한 6명의 재판관을 포함한 모든 재판관들은 고액 과외나 현직 교수, 교사의 과외는 금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결정문에 이 같은 취지를 명시했다.

이는 헌재가 법 개정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한 ‘고육책’으로 교육부 등 행정부 쪽에 민감한 과외 문제의 해결이라는 공을 다시 넘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행정부의 입법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대가를 ‘고액’으로 인정해 규제할 것인지, 또 현직 교사의 어떤 활동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직 교사나 교수들이 새 법이 만들어질 때까지의 입법 공백 상황에서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점을 악용해 관련법에 따른 징계를 감수하고 과외를 하는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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