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총파업의 부당성을 지적한 신문광고와 중소기업인으로서 겪은 우리사회의 뇌물실태에 대한 폭로로 잇따라 화제를 모은 재이손산업 대표 李永守(이영수·60)씨가 27일자 주요 일간지 광고를 통해 검찰을 정면으로 공격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씨는 「마피아의 총대로 만든 잣대!」라는 제목의 광고문에서 『부정부패비리를 수사할 때마다 검찰은 정의의 칼로 부정부패비리를 척결하기보다는 「마피아의 총」으로 오히려 부정을 은폐하고 옹호했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패하고 무능하면서도 교활하고 줄을 잘타는 검찰 수뇌부들임을 검찰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부정부패 비리의 실질적 옹호세력으로서의 배후는 법위에 군림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다수의 정치적 검찰과 그 수뇌부』라며 『법무장관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 및 다수의 검사들을 이날짜로 해고한다』고 무차별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문제의 광고내용에 대해 검찰관계자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일부 검사와 대부분의 시민들은 「검찰의 업보(業報)」라며 이씨의 주장에 동조하는 등의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 시민 반응 ▼
이사장의 검찰비판에 서울 경기는 물론 부산 마산 청주 해남에 있는 일반직장인과 기업체사장, 목사 등이 격려팩스를 보냈다.
「속시원하고 후련한 기분좋은 아침에」라는 추신을 붙여 보낸 서울 종로의 강모씨는 『이나라에 과연 정의가 살아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일반시민의 눈에 비친 검찰의 모습은 너무 허약하고 편파적이어서 이제는 죄를 저질러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며 『검찰의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모목사(서울 성동구 옥수1동)는 『경찰과 검찰은 국민위에 군림해서 온갖 횡포를 자행해온 직무를 유기한 집단임에 틀림없다』며 『경찰과 검찰이 제자리를 찾도록 정치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부화재에 근무한다는 유모씨는 『의로운 당신의 싸움옆에는 보이지 않는 민초들이 있으니 당신은 결코 「도마위에 오른 도미」가 아니다』고 격려했다.
인천 남구 용현동의 이모씨 등 6명이 연명으로 보낸 팩스는 『다음은 무능하고 부패한 김영삼정권에 대한 외침을 부탁한다』고 적었다.
〈김정수 기자〉
▼ 검찰 반응 ▼
검찰고위관계자는 『국가공권력의 상징인 검찰을 논리보다는 선동하듯 마구잡이로 매도해도 되느냐』며 이씨의 행동을 「돈키호테식 행동」 「스타의식에 빠진 정신나간 행동」으로 혹평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1천여명의 검사 대부분이 매일 밤잠을 제대로 자지못하고 범죄와 싸우고 있는데 정치적 사건의 수사결과 하나로 검찰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승복할 수 없다』면서 흥분했다.
그러나 검찰 일각에서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항상 성역시해온 검찰의 업보』라며 자책하는 분위기도 적지않다.
특히 일부 소장 검사들은 『특별검사제를 수용해서라도 더 이상의 비난을 막고 공권력의 위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씨에 대해 공식대응은 하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원표 기자〉
▼李씨 인터뷰 ▼
재이손산업 李永守(이영수)사장은 『검찰을 비난하는 광고를 게재한 뒤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검찰로부터 연락이 오면 언제나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사장은 또 『겁나서 도망갈 생각은 없다』며 『어차피 사람은 벌거벗고 태어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노동자 공무원 검찰을 잇따라 비판하고 있는 데 대해 『무슨 계획이 있어 그러는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느낀 바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광고가 나간 뒤 수십통의 전화와 2백통이 넘는 격려 팩스를 받았다는 그는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지 않으냐는 지적에 대해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하고 나쁘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왜 자신의 주장을 광고의 형식을 빌려 표현하느냐』고 묻자 『그동안 내 의견을 적어 언론에도 여러번 보냈으나 반영해 주지 않아 광고라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수천년을 이어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땅에서 내세대를 끝으로 부정부패를 없앨 수 있다면 하나뿐인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겠다』며 『그래서 나를 「이미 도마 위에 오른 도미」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금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