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펀드 구성-운영 어떻게
원리금 상환 후엔 美 90 %-韓 10%… 韓, 20년내 원리금 못 받으면 조정
7월 “현금 5%”서 2000억 달러로… 외환보유 원금 지키며 가용 최대치
합의 문서, 2~3일 뒤 공개 될 듯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확대오찬회담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한미 관세협상을 극적 타결한 것은 협상 최대 난관으로 꼽혔던 3500억 달러(약 500조 원)의 대미(對美) 투자펀드를 두고 절충점을 찾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대미 투자펀드의 현금 투자 규모를 연간 최대 200억 달러 규모로 제한하되 외환시장 상황에 따라 납입 기간을 조정하는 안전장치를 두기로 한 것. 다만 3500억 달러 중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직접 투자하기로 한 것은 당초 대미 투자펀드의 95% 이상을 대출과 보증으로 조달하려 한 정부의 구상에 비해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외환시장 안정과 원금 회수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서 관세 협상 장기화로 인한 불확실성을 낮추는 데 주력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 ‘年 200억 달러’ 한도, 초기 수익 5 대 5 배분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브리핑을 통해 “대미 금융 투자 3500억 달러 중 2000억 달러의 전략산업 투자펀드는 전액 현금 투자하고, 2000억 달러 대미 투자액의 연 납입 한도 상한은 최대 200억 달러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 굿즈 전시품을 관람하며 대화 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 제공
앞서 한국 정부가 2000억 달러 투자펀드가 직접 투자액인 ‘지분 투자(Equity)’가 아닌 보증(Credit Guarantee)과 대출(Loan) 등으로 구성된다고 한 것과 달리 전액 현금 투자로 결정된 것. 투자액에 대한 원리금 상환 전까지는 한국과 미국이 수익의 각각 50%를 배분받고, 이후에는 미국이 90%, 한국이 10%를 받는 구조로 일본이 미국과 맺은 협정과 동일하다. 김 실장은 “연간 200억 달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라며 “국내 외환시장에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00억 달러는 투자 프로젝트 수요가 있을 때 미국의 요청에 따라 투자되는 이른바 캐피털 콜(Capital Call·출자 요청) 방식으로 조달된다. 투자처와 금액을 결정할 투자위원회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위원장을 맡지만 투자위원회에는 한국인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합류하기로 했다. 또 투자위원회의 투자 결정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협의위원회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맡기로 했다. 김 실장은 “미국 측이 협의위원회의 검토나 협의와 달리 일방적 투자를 요구할 경우 추후에 미국과 협의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강조한 ‘상업적 합리성’의 원칙에 따라 대미 투자의 원금 회수 장치에 대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하기로 했다. 한국이 20년 내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 여기에 현금 투자로 인해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될 경우 납입 시기 조정 등을 요청할 근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한국 외환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외환시장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설명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했다.
● 관세 합의 문서는 2, 3일 뒤 공개될 듯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저녁 경북 경주 힐튼호텔에서 열린 APEC 리더스 실무협의 만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2025.10.29 경주=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정부는 한미 관세 합의에 대한 구체적인 양해각서(MOU)와 팩트시트(fact sheet)가 수일 내로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통상과 관련한 MOU는 문안이 거의 다 마무리돼 있다”며 “안보 분야와 합쳐 2, 3일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이날 합의를 두고 가용한 외환을 미국에 ‘영끌 투자’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0억 달러는 지난해 연간 대미 무역흑자(557억 달러)의 35% 수준에 이른다. 연 200억 달러 현금은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9월 말 기준 4220억2000만 달러)을 활용한 투자 배당금 등으로 충당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이라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0억 달러에 대해 “자체적으로 보유한 자산에서 나오는 이자와 배당을 활용해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외환시장 상황에 따라 연 200억 달러의 현금 투자액을 조정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됐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외화 유출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면 외환시장 충격에 대응할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매년 꾸준히 거액의 외화가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시장의 부담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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