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기사마다 ‘입막음 소송’ 남발, 권력비리 보도 위축될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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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입법 폭주] 법사위 통과 언론중재법 문제점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와 박완주 정책위원회 의장(왼쪽부터) 등 민주당 지도부 소속 의원들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정책조정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와 박완주 정책위원회 의장(왼쪽부터) 등 민주당 지도부 소속 의원들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정책조정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현장에 적용될 경우 ‘전략적 봉쇄 소송(SLAPP)’이 남발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허위나 조작 보도의 개념을 모호하게 정의한 데다 언론사의 고의 및 중과실까지 추정할 수 있도록 한 탓에 비판 보도의 대상이 된 이들이 일단 소송으로 대응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일명 ‘입막음용 소송’이라 불리는 전략적 봉쇄 소송은 공적 의제에 관한 비판이나 반대 여론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을 말한다. 애초에 소송의 주요 목적이 승소가 아니라 상대에게 비용 부담이나 정신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언론 보도를 대상으로 전략적 봉쇄 소송이 이어질 경우 기자와 언론사들이 법적 대응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되고 결과적으로 비리 의혹 제기나 비판적 보도, 취재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전략적 봉쇄 소송이 불러올 위축 효과를 훨씬 강하게 만들었다”며 “기자가 사실로 여겨 보도했더라도 만약 나중에 허위로 밝혀질 경우 언론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이 이뤄지고, 원고의 입증 책임이 사라지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언론재갈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적용되면 특히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이 손쉽게 전략적 봉쇄 소송을 제기해 비판적 보도를 막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기존 언론 상대 소송에서도 일반인보다 공직자나 기업의 제소 비율이 더 높은 상황을 감안하면 언론중재법은 이 격차를 더 벌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언론중재위원회가 2019년 발간한 ‘언론 관련 판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당해 언론 관련 소송 중 단체, 유명인, 공적 인물이 원고로 제기한 소송은 236건 중 162건으로 68.6%에 달했다. 반면 일반인이 소송을 제기한 비율은 31.4%에 그쳤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언론 관련 소송 제기는 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일반 국민을 위해 추진한다고 주장하는 언론중재법 개정 취지가 현실과 맞지 않다고 우려를 표했다.

법조계도 전략적 봉쇄 소송이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소송이 헌법상 청원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2019년 기준 29개 주가 ‘전략적 봉쇄 소송 방지법(Anti-SLAPP law)’을 두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목적의 소송을 법원이 조기에 각하하도록 하는 장치다.

앞서 올 2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재판관 9명 중 위헌 의견을 낸 4명의 의견서를 보면 전략적 봉쇄 소송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의견서에는 “공적 인물과 공적 사안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보도를 봉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에 대해서도 형사절차가 개시되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 가능해졌고, 표현의 자유는 심대하게 위축됐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보도를 주저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면서 “언론에 의한 피해는 언론에 의해 구제하는 게 원칙이다. 반론이나 잘못된 내용은 독자들이 지면과 인터넷에서 볼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고 밝혔다.

전략적 봉쇄 소송(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승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나 감시를 막기 위해 하는 소송. 주로 기업, 정부, 공직자 등이 공적 관심사나 의제와 관련해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개인이나 조직, 단체를 대상으로 제기한다. 국민의 청원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문제가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언론중재법#법사위 통과#입막음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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