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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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대통령중심제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한국의 대통령 입에서 나온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집권 4년 차 대통령의 무력감과 회한을 토로했다. “꿈은 많고 의욕도 많고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했는데, 거의 안 됐어요. 혼자 가만히 있으면 너무 기가 막혀 마음이 아프고….” “대통령이 돼도 한번 해보려는 것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느냐. 나중에 임기를 마치면 엄청난 한(恨)이 남을 것 같아요.”

총선 참패에 ‘내 탓이오’는 없고 ‘네 탓’만 하는 박 대통령을 보면 ‘정말 그렇게 못 바꾸나. 아니, 바뀌는 척이라도 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 입장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면 국회선진화법이 만든 ‘식물국회’에서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이해도 간다. 지금 박 대통령의 처지와 고뇌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이가 딱 한 사람 있기는 하다.

박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여소야대보다 더 힘든 것은 여당과 정부 내부에서 삐거덕거리는 것”이라며 “여당과 정부는 수레의 두 바퀴다. 이 바퀴는 이리 가는데, 저 바퀴는 저리 가고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며 비박(비박근혜) 지도부 체제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이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야심 차게 추진했던 세종시 수정안은 2010년 6월 박 대통령이 공개 반대하면서 부결됐다. MB 레임덕의 신호탄이었다. 본보 정치부장이던 나는 집권 4년 차 이후 이 전 대통령을 정치부장단 오찬과 인터뷰 건으로 청와대에서 두 번 대면한 일이 있다. 당시 측근 비리와 내곡동 사저 논란에 시달린 MB는 지친 표정이었다. 무력감도 깊게 느껴졌다. 국회선진화법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막강한 ‘미래 권력’ 박근혜가 레임덕의 진원(震源)이었다.

취임 후 전직 대통령을 초청한 일이 없는 박 대통령은 MB부터 만나야 한다. 집권 4년 차 이후의 국정 경험을 경청하고, 전임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 경험은 소중한 국가 자산이다.

정적(政敵)이던 MB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해소하는 데도 보탬이 될 것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대선 본선에서 맞붙었던 전임 조지(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초청해 화해의 장(場)을 펼치지 않았던가. MB와의 단독 회동이 불편하다면 건강이 허락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함께 만나도 좋겠다.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정권은 말이 여당 정권승계지, 정권교체보다 더하다. MB 정부에서 잘나가던 관료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물 먹은 이가 태반이다. 도리어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 정부에서 3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의 반목은 대통령 단임제의 폐해를 증폭시켜 엄청난 국가적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집권 4년 차 이후 관료들은 차기 정권에서 물먹을까 봐 청와대 파견을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5년마다 리셋(초기화)하는 ‘초보 정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실패의 사슬을 끊을 때도 됐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제왕적 대통령제#박근혜#식물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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