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정건전화법 실효 높이려면 ‘쪽지예산’부터 없애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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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새로운 재정지출이 필요한 법률을 만들 때 재원조달 방안을 함께 내도록 하는 가칭 재정건전화특별법 제정안을 정부가 어제 내놓았다. ‘페이고(Pay-go)’로 불리는 이 원칙은 현재 정부입법 때만 적용되지만 앞으로 의원입법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가 감당할 빚의 한도를 정하는 채무준칙과 정부 수입이 늘어나는 범위 내에서만 지출 증가를 허용하는 지출준칙도 특별법에 담는다. 정부는 올 하반기 정기국회 이전에 특별법 제정안을 국회에 낼 계획이다.

재정건전성은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과제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2월 초 600조 원대를 넘어섰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지난해 말 기준 37.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15.2%)보다 낮은 점에 안도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할 뻔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가채무비율은 11.9%에 불과했다. 공무원·군인연금같이 숨은 빚을 포함한 국가부채는 1284조 원이나 된다. 건강보험 기금은 2025년에 고갈되고 국민연금 기금도 2060년이면 바닥난다. 선진국과 단순 비교한 통계의 착시에 빠졌다간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이번에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단속이나 유사 중복 사업 통폐합 같은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현실에 대한 자성이 빠진 점은 아쉽다. 어제 정부는 각종 제도를 강력히 시행하고 새는 돈을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정책 실패를 보완하지 않는다면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제도를 잘 정비해도 정치권의 변화 없이는 국고가 새는 구멍을 근본적으로 틀어막을 수 없다. 국회가 페이고 같은 재정의 원칙을 무력화하는 것은 여야가 담합하면 식은 죽 먹듯 쉬운 일이다. 지역구 의원들이 선심성 사업을 나라 가계부에 슬쩍 끼워 넣는 쪽지예산 관행이 살아있는 한 페이고 원칙은 공염불이다. 국회에 제출하는 정부 예산안에 ‘삭감돼도 무방한 사업’을 숨겨뒀다가 이 돈으로 의원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해묵은 쪽지예산 관행부터 물샐틈없이 차단해야 한다.
#재정건전화법#페이고#pay-go#재정건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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