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달 초부터 억류 중인 미국인 대학생의 기자회견 영상을 29일 전격 공개하며 특유의 ‘인질 외교’를 시작했다.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유엔과 주변국의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되자 미국인 억류자를 내세워 위기관리에 나서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지난 달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제 사회의 비난이 커지자 미국 국적의 한국인 사업가인 김동철 씨(63)의 억류 사실을 역시 CNN을 통해 공개했다.
CNN은 이날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미국 버지니아대 경영학과 3년생인 오토 웜비어 씨(21)의 기자회견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일부터 억류 중인 웜비어 씨는 밝은 초록색 양복을 입었지만 잔뜩 움츠린 자세로 경비원의 경호를 받으며 회견장에 들어섰다. 그는 “양강도국제호텔 종업원 구역에서 정치적 구호가 담긴 선전물을 떼어버리는 범죄를 범했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그는 이어 “북한 인민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흐느꼈으며 허리를 굽혀 사죄의 인사를 하기도 했다. 북한 당국을 의식한 듯 “미국 행정부에 꾐에 빠져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 절대로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일을 했다”며 “미국이 나처럼 자국민을 부추겨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웜비어 씨는 중국 시안에 본사를 둔 북한전문여행사 ‘영 파이어니어 투어스’를 통해 북한에 여행을 갔다가 출국 당일인 지난달 2일 평양 공항에서 체포됐다. 북한 당국자는 그가 출국 전날 새벽 2시에 호텔 2층 종업원 구역에서 미리 챙겨온 발소리가 적게 나는 신발(quiet shoes)을 신고, 정치 구호가 담긴 표식이나 배너를 훔치려다가 적발됐다고 CNN에 전했다.
CNN은 이 관리의 말을 인용해 웜비어 씨가 지난해 오하이오 주 와이오밍에 있는 우애연합감리교회의 관계자와 접촉했다고 전했다. 이 교회는 평소 북한을 반기독교적 공산국가로 지목하며, 공산주의는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또 교회는 북한 주민들의 사상적 단결력과 의욕을 약화시키기 위해 북한의 선전물을 뺏어오는 것은 중요하며 웜비어 씨가 이에 성공하면 1만 달러(1230만 원)짜리 중고차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고 CNN은 전했다. 해당 교회 원로 목사는 “웜비어 씨나 그 가족을 만난 적이 없다”고 CNN에 말했다.
이날 나온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실패할 경우 교회가 웜비어 씨 가족에 20만 달러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조건은 교회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북한은 웜비어 씨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연결 고리가 있는 버지니아대의 봉사단체인 ‘Z협회’ 회원들과도 지난해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인질외교’가 먹힐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2014년 10월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 씨, 다음 달 케니스 배 씨와 매튜 토드 밀러 씨 등 억류했던 미국인 3명을 모두 풀어줬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억류자 석방은) 작은 제스처에 불과하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진정성 있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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