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1일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하는데 친이, 친박이 어디 있느냐”면서 “친이라 그러기에 친이재오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저녁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한나라당 지도부 및 선대위 관계자들과의 만찬에서 “(자꾸) 친이, 친박이 나오니까 아직도 경선 국면이라고 생각하고, 착각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국내에 내 경쟁상대가 어디 있느냐”면서 “내 상대는 외국 지도자들이고, (내 역할은) 국가경쟁력을 올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이후에도 자신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경쟁상대로 설명하는 시각에 거부감을 보여 왔다. 이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 나를 결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세계 일류국가 지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며 그들과 경쟁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대통령이 특정 정파의 수장도 아닌데 왜 아직까지 친이, 친박을 갖고 논란을 벌이느냐. 당이고 청와대고 ‘이명박 계보’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느냐”면서 “이제 그런 논란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4·9총선’ 결과와 관련해 “국민이 정말 절묘하게 표를 주셨다. 과반을 만들어줄 정도로 표를 준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역발상’에 근거해 새로운 대야 관계를 정립하고, 청와대와 의회 관계도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의도식 계파 논리’에서 탈피하겠다는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생각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재오 이방호 의원 등 친이 세력의 핵심이 낙마한 위기 속에 친이-친박 대결 구도가 조기에 점화될 경우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계산 때문에 일종의 지연전술을 쓰는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편 이날 만찬에서 이 대통령은 직접 국산 양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 4잔을 만든 뒤 옆자리의 박희태 김덕룡 중앙선대위원장 및 김학원 최고위원과 함께 “이제 위하야(野)가 아니라 위하여(與)지요”라고 조크성 구호를 외치며 ‘원샷’을 제안했다. 특히 박, 김 선대위원장과 맹형규 수도권 선대위원장에게는 특별히 “애쓰셨다. 덕분에 됐다”며 사의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만찬에는 이들 외에도 정몽준 전재희 한영 최고위원, 안상수 원내대표, 이한구 정책위의장, 안택수 선대위 부위원장 등 선대위 관계자 15명이 참석했다.
강재섭 대표는 이날 부친상으로 불참했으며 공천에서 떨어진 정형근 최고위원과 낙선한 이방호 사무총장도 참석하지 않았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