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상징? 대국민 사기극?…與기간당원제 갈등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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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당원은 기간(基幹)당원이냐, 기간(期間)당원이냐. 당비 대납 비율은 80%냐, 90%냐.”

열린우리당이 2003년 출범 당시 정치 개혁의 초석이라며 도입한 기간당원제를 두고 골치를 앓고 있다. 유시민(柳時敏) 의원 등 당내 친노(親盧) 개혁파가 주도해 만든 기간당원제는 월 2000원의 당비를 6개월 이상 낸 당원에 한해 당내 공직후보자 경선 등에서 투표권을 주는 제도.

현재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은 55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내년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 등이 당비를 대납해 주고 모집해 온 사람들이라는 게 당내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2일 “최근 기간당원제 고수를 주장하는 의원에게 ‘솔직히 55만 명 기간당원의 90%는 당비를 대납해 주고 모집한 당원 아니냐.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더니 그가 정색하면서 ‘아니다. 당비 대납 당원은 80%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며 고소를 지었다.

돈으로 모집된 기간당원은 당내 공직후보 경선 등 ‘볼일’이 끝나는 즉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한 중진 의원은 “기간(基幹)당원이 아니라 당내 경선까지의 기간만 당비를 내는 기간(期間)당원제로 전락했다는 자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6개월 이상 당비 납부’ 조건을 역산해 보면 8월 말 이전에 기간당원 가입 원서를 내고 당비 납부를 시작했어야 내년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열린우리당에서는 8월 말까지 지방선거 예비 후보군 등이 경쟁적으로 당비를 대납해 주며 기간당원을 끌어 모으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 결과 기간당원이 급증했던 것.

한 중진의원은 “정치 개혁한다고 해놓고선 당비를 대신 내주며 가짜 당원이나 모으는 것이 참으로 구차한 것 아니냐. 말하자면 대국민 사기극인 셈이다”고 탄식했다.

열린우리당의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기간당원제가 내년 5월 31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패배를 자초할 ‘함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 제도하에서는 돈을 써가며 기간당원을 많이 모은 구태 정치인일수록 내년 초 당내 후보 경선에서 당선될 확률이 커진다. 경쟁력 있는 참신한 후보 영입은 아예 불가능해진다.

가뜩이나 당 지지율이 낮은데 후보의 경쟁력까지 떨어진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해보나 마나’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면서 기간당원제 폐지론이 공개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상임중앙위원을 지낸 염동연(廉東淵) 의원이 이날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무리 이상이 옳다고 해도 국민 수준과 상황에 맞춰 가야 한다”며 기간당원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원혜영(元惠榮) 정책위의장도 “기간당원제의 취지는 순수하고 좋지만 공직선거 공천까지 기간당원이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며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의 임시지도부인 비상집행위원회에서도 기간당원제 개폐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유 의원과 핵심 기간당원들이 “정치 개혁의 상징인 기간당원제를 훼손하려는 것은 정치 개혁을 하지 말자는 주장과 같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유 의원은 지난달 28일 당 중앙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기간당원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이 나오자 “내 발로 나갈 생각은 없지만 나가라는 말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기간당원제 존폐 문제를 둘러싸고 열린우리당이 또 한 차례 파란을 겪을 것 같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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