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힐 차관보 “남-북-中과 평화협정 논의”

  • 입력 2005년 8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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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사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7일 “미국은 4차 6자회담을 전후로 북한은 물론 한국 중국과 함께 (북-미)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는 이날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초청강연을 통해 “미국과 한국이 함께 이런 (평화협정 체결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과는 회담 재개 2주 전쯤 베이징(北京)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중국과는 회담 기간에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핵 포기의 대가’로 요구해 온 북-미 관계개선 문제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넓은 차원의 동북아 질서 개편의 한 축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곧이어 “6자회담은 (6·25전쟁 후 북한 미국 중국 등 3국이 체결한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는 적절한 장소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의 시기상조론은 13개월 만에 재개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핵 없이 살아 보겠다’는 북한의 전략적 결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간 준비작업이 필요한 평화협정 체결 문제로 회담의 논점이 흐려지는 것은 막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도 이날 “(평화협정 문제가) 6자회담장에서 거론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한미 양국의 견해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 포기 결심을 한다면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 등) 새로운 양자관계의 태동이 가능하다”며 “6자회담이 동북아의 장래를 위한 초보적인 협의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北 평화협정 주장 이유는▼

평화협정이란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평화협정, 2차 대전 후 파리평화협정과 같이 교전 당사국들이 전쟁 종료를 공식 선언하고 평화적 관계 수립을 위한 제반 문제를 규정하는 국가 간 협정이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줄곧 제기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달 22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6자회담에서 평화협정 문제가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형식에 대해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중국이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 지위를 내세워 끼어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약해져 지위나 역할 변경 문제가 뒤따르게 된다.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UNC)의 존폐 문제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주로 겨냥하고 있는 한미동맹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북한은 1974년 대미(對美)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며 △상대방에 대한 불가침 서약과 무력충돌 위험성 제거 △군수물자 반입 중지 △외국군의 빠른 기간 내 철수 △미군 철수 후 남한의 외국군 기지화 불가 등 4개항을 요구했다.

이처럼 평화협정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안보환경에 큰 변화를 초래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현실화하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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