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어부 고명섭씨 30년만에 귀향…정부는 아무일도 안했다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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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호 선원 고명섭 씨(왼쪽)가 12일 어머니 김영기 씨와 30년 만에 만났다. 상봉을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도 흐느껴 고 씨의 고향집은 울음바다가 됐다. 강릉=변영욱 기자
천왕호 선원 고명섭 씨(왼쪽)가 12일 어머니 김영기 씨와 30년 만에 만났다. 상봉을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도 흐느껴 고 씨의 고향집은 울음바다가 됐다. 강릉=변영욱 기자
《“내 아들 명섭이가 맞는 거지, 죽은 줄만 알았던 내 아들을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네, 어머니. 제가 명섭이 맞습니다.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12일 오후 1975년 8월 동해에서 납북됐다 30년 만에 돌아온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10리 천왕호 선원 고명섭(62) 씨의 고향집. 팔순 어머니 김영기(83) 씨는 육순이 훌쩍 넘은 늙은 아들의 얼굴과 머리를 연방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흐느꼈다. 어머니 품에 안긴 아들 고 씨도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라고 되뇌며 흐느끼다 말을 잊지 못했다. 모자의 상봉을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흐느껴 온 동네가 울음바다가 됐다. 》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1973년 전역한 고 씨는 1975년 고향으로 돌아와 두 번째 오징어잡이에 나섰다 납북됐다. 고 씨는 이후 북한에서 결혼해 평북 성천에서 양계장 노동자로 일했다. 고 씨의 남쪽 가족들은 납북에 대한 심증은 갖고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실종자로 처리됐다.

하지만 1997년 인천에서 여관을 운영한다는 한 여인에게서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동생이 편지를 전달받았다”며 고 씨 가족에게 연락했다. 경기 부천시에 살던 고 씨의 여동생은 한걸음에 인천으로 달려가 오빠의 편지를 확인했다. 남동생 만용(44) 씨는 “편지에 누나와 내가 어렸을 적 고향집에서 뛰어놀던 이야기를 상세히 써놓아 금방 형님이 쓴 것이란 걸 알아볼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 씨 가족들은 2001년과 2003년 어머니 이름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확인 불가’라는 어이없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가족들은 무작정 정부에만 기댈 수 없다는 생각에 고 씨를 남한으로 데려오는 계획을 세우고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崔成龍)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2002년 6월 마침내 고 씨를 중국 국경지대까지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가족들은 고 씨를 만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가서 기다렸으나 고 씨의 탈북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고 씨의 소식이 한동안 끊겨 가족들은 애를 태웠다.

고 씨는 두 번째 탈북을 시도해 3월 24일 성천을 떠나 같은 달 26일 신의주에 도착했으며 28일 국경을 넘어 중국 단둥(丹東)에 도착했다. 그는 탈북 후 한동안 북쪽에 남겨둔 부인과 자녀(남매)들을 이야기하며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너를 보지 못하면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말을 휴대전화로 들은 고 씨는 같은 달 31일 중국 선양(瀋陽) 한국영사관의 문턱을 넘어 가족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7월 20일 서울에 도착해 관계 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고 씨 가족들은 “엄연히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는데도 정부가 모른 체해 온 처사가 너무한 것만 같다”며 그동안 애끓였던 심정을 토로했다.

어머니 김 씨는 “북에 남겨둔 자식 걱정을 할 아들을 생각하면 또다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이날 고 씨의 고향집에는 형제 친척과 주민, 2000년 귀환한 납북어부 이재근 씨, 천왕호 납북선원 가족, 납북자가족모임 회원 등 50여 명이 찾아와 고 씨의 귀환을 축하했다.

천왕호 납북선원 가운데 막내인 이해운(당시 20세) 씨의 어머니 손봉녀(79) 씨는 “왜 우리 아들도 데려오지 않았느냐”며 통곡해 주위를 숙연케 하기도 했다. 이 씨는 “1년만 배를 타고 돈을 벌어 고등학교에 가겠다”며 고기잡이에 나섰다.

또 다른 납북선원 최욱일(66) 씨의 부인 양정자(65·경기 안산시) 씨는 “남북 관계가 좋아지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납북선원들의 상봉을 주선하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강릉=최창순 기자 cschoi@donga.com

:천왕호 납치 사건:

1975년 8월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을 떠난 오징어잡이 배 ‘천왕호’ 선원 31명이 동해 대화퇴 어장에서 북한 경비정에 의해 배와 함께 납북됐다. 당시 천왕호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정됐으나 사건 발생 22년 만인 1997년 선원 고명섭 씨가 보낸 편지가 남한의 가족에게 전해지면서 피랍 사실이 알려졌다. 정부는 1999년까지 선장 김두익 씨만을 납북자로 인정했으나 다른 사건으로 납북된 어부 이재근 씨가 2000년 6월 탈북해 천왕호가 납북됐다고 증언하자 나머지 선원 30명을 납북자 명단에 새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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