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遊 국회의원에 ‘특수활동비’ 100만원… 年 4억 편법지급

  • 입력 2005년 7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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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지출 용도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특수활동비’ 항목으로 연간 4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의원들의 해외방문 때 ‘장도(壯途) 격려금’으로 편법 지급해 온 것으로 14일 밝혀졌다.

이는 본보가 2004년 6월 17대 국회 출범 이후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의원들의 해외출장 및 경비사용 명세 등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이 기간에 의원들은 모두 57차례 해외출장을 다녀왔으며 이들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출장경비(항공료, 체재비, 업무추진비)와는 별개로 1인당 1000달러(약 100만 원)의 특수활동비가 지급됐다.

기획예산처의 예산규정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는 ‘특수한 업무수행 및 사건수사 활동’에 한해 영수증 처리 없이 돈을 쓸 수 있도록 한 항목으로 통상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수사기관 등에만 지급된다.

그러나 국회는 특수활동비를 의원 해외출장 때 ‘품위유지 격려금’으로 주는 등 예산 목적 외로 사용하고 있다. 2005년 국회의 특수활동비 예산은 4억337만 원이다. 행정부 장관(국무위원)의 해외출장에는 통상 특수활동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해외방문 의원 1인당 1000달러, 수행하는 사무처 직원(방문단별 1∼4명 정도)에게는 500달러 정도를 품위유지 격려금으로 주는 게 국회의 관행”이라며 “이 돈은 특수활동비에서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3월 ‘터키 의회 초청 방문단’ 의원 5명 등에게는 570만 원, 같은 달 한미외교협의회 의원 9명 등의 미국 방문 때는 1117만 원의 특수활동비가 지급됐다.

이에 따라 국회가 특수활동비 예산을 편성하고 지출하는 것은 편법을 통한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57차례의 의원해외방문단이 사용한 출장 경비는 총 34억5000여만 원으로 나타났다. 매번 평균 6000여만 원을 쓴 셈이다.

해외출장 때는 항공료와 체재비(숙식비, 일비) 외에 현지 인사들에 대한 선물비, 통역비, 현지 공관 격려금, 교민 초청 연회비 등에 쓸 수 있는 업무추진비도 지급된다. 특수활동비가 없어도 ‘품위 유지’가 가능한 수준의 경비가 지원되고 있는 셈이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 의원들 출장비 어떻게 썼나

국회의원의 해외 출장비용은 ‘공무원 여비규정’에 따라 지급되며 항공료와 체재비(숙식비와 일비), 업무추진비로 구성된다.

국회의원은 장관급에 준해 예우하기 때문에 항공기의 경우 1등석을 타도록 돼 있지만 예약이 여의치 않을 경우 비즈니스나 이코노미 클래스로 가는 경우도 있다.

항공권은 통상 국회 사무처가 항공사에서 일괄 구매해 준다. 마일리지는 출장자 각자에게 귀속된다. 숙박비, 식비, 일비(日費) 등 체재비는 출국 전 정액으로 일괄 지급된다. 물가가 비싼 1급지(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의 경우 숙박비는 1박에 387달러, 하루 세 끼 식비는 186달러, 일비는 60달러다.

체재비는 규정액보다 많이 썼다고 해서 더 주지 않고 적게 썼다고 해도 반납할 필요가 없다.

업무추진비는 일정액(방문단별 평균 979만 원)을 먼저 준 뒤 영수증을 첨부해 사후 정산해 남으면 반납하게 돼 있으나 반납한 경우는 거의 없다. 교민 초청 만찬, 여행 가이드비 등 여행과 관련된 거의 모든 비용이 업무추진비로 인정된다.

▽특수활동비는 외유 촌지=의원들이 해외출장을 가면 이런 공식적인 경비 외에 의장이 1000달러 정도씩 장도격려금을 주는 게 국회의 오랜 관행이다. 그 격려금이 바로 특수활동비 예산 항목에서 지출되는 돈이다.

딱히 기준은 없지만 상임위나 특위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나가는 방문단원에게는 거의 모두 격려금을 준다. 다만 해외에 빈번하게 나가는 의원이나 2004년 11월 제6회 한일의원축구대회 참석을 위한 일본방문의원단(총 33명) 등 특수한 경우는 주지 않기도 한다.

격려금으로 받는 만큼 의원들은 이를 공금이라기보다는 개인 용돈으로 여기고 실제 그렇게 쓴다고 한다. 하지만 예산규정 어디에도 공무원들에게 격려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래서 국회가 고안해낸 편법이 바로 특수활동비 예산 편성인 셈이다.

▽업무추진비는 ‘만능 비용’=17대 국회 출범 이후 1년여간 의원들이 해외출장 때 쓴 업무추진비는 총 5억5849만 원, 방문단별 평균 979만 원에 이른다.

방문단별 업무추진비 정산명세서에는 각종 격려금과 교민 또는 현지 요인 초청 만찬주최비용을 포함해 현지 가이드비, 차량 임차료, 통역비, 현지 수행원과 운전사의 팁, 출국에 필요한 해외여행자보험 등이 망라돼 있다.

방문국 주요 인사들에게 전하는 선물구입비도 업무추진비로 충당된다. 선물은 주로 개당 5만∼6만 원대의 자개함, 손목시계, 홍삼선물세트, 스카프 등이다.

전화카드, 건전지, 화장품 등 소액물품 구입 영수증도 첨부됐다. 올해 1월 스리랑카 등지를 방문한 ‘남아시아 지진해일피해지역 시찰단’의 경우 항공권을 사무실로 전달받는 퀵서비스 비용 7만 원을 청구하기도 했고 같은 달 페루 브라질 등지를 방문한 정무위원회 해외시찰단의 정산명세서에는 자외선차단크림 구입비 3만5000원도 포함돼 있다.

▽대사관 직원 ‘격려비’도 관행=방문단들의 정산명세서에서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항목 중 하나가 해외공관 격려금이다. 현지 공관 직원이 서명한 수령증까지 첨부돼 있다.

올해 3월 법제사법위원회의 ‘구주시찰단’은 폴란드 체코 네덜란드 영국을 돌며 각 대사관에 800∼1000달러씩의 격려금을 주었다. 4월 교육위원회의 ‘주변 경쟁국 경제특구 시찰단’도 싱가포르에 갔을 때 대사관에 500달러를 격려금으로 줬다.

의원외교단을 수행한 적이 있는 한 관계자는 “의원들이 해외에 가면 현지 대사관 직원들이 가이드를 해 주거나 연락업무 등에서 편의를 봐 주는 경우가 많다보니 일종의 사례로 돈을 주는 게 관행으로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신성미(서울대 사회학과 4년), 신희석(연세대 경제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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