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지역 시설물 철거로 점등행사 취소

  • 입력 2004년 11월 17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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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면 불을 환하게 밝혔던 서부전선 애기봉의 성탄기념 점등탑. 전방 근무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줬던 점등탑의 불 켜진 모습을 올해부터 볼 수 없게 됐다.동아일보 자료사진
해마다 연말이면 불을 환하게 밝혔던 서부전선 애기봉의 성탄기념 점등탑. 전방 근무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줬던 점등탑의 불 켜진 모습을 올해부터 볼 수 없게 됐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올해 휴전선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연말 분위기를 못 느낄 겁니다.”

강원 최전방 A사단의 철책에서 근무 중인 김모 상병(20)은 최근 상급부대로부터 ‘매년 실시했던 연말의 각종 종교물 점등 행사를 취소한다’는 지시를 전해 듣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철책 지역 내 십자가 점등과 크리스마스트리 설치는 전방 근무의 남다른 추억이자 철책 경계병들이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주요 행사 중 하나. 이를 위해 전방부대는 매년 11월 말부터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6월 제1회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양측이 휴전선 일대의 확성기와 시설물 등 각종 선전수단을 철거키로 합의한 이후 올해 전방부대의 점등 및 크리스마스트리 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지난해 50번째로 불을 밝혔던 서부전선 애기봉의 성탄기념 점등탑도 올해는 전구 설치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됐다.

북한군이 볼 수 있도록 휴전선 가까이에서 점등 행사를 하는 것은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전방 근무 병사들이 “야간근무 중 불을 밝힌 남쪽의 십자가와 어두운 북쪽 철책을 비교하며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느꼈다”고 말할 만큼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돼 왔다.

군 일부에서는 병사들의 사기를 고려해 ‘종교 시설물은 철거 대상 선전도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국방부는 “남북 합의에 따라 상대방에 영향을 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그 같은 의견을 일축했다.

남북한은 임진강 북부 말도부터 강원 철원군 갈말읍까지 구간(남한 지명 기준)의 선전도구 철거를 끝마쳤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사건 등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강원 고성군 현내면까지 마지막 구간 철거는 중단된 상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말 최전방 3중 철책 절단사건이 일어난 이후 병사들의 사기는 더 떨어졌다. 경계 시스템과 감시 장비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이 벌어졌고, 지휘관들도 수시로 철책을 찾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혹한인 전방의 겨울이 올해 더욱 추울 것 같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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