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정희/개혁세력의 ‘담합’

  • 입력 2004년 7월 7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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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글자 그대로 놀라운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대표적 인터넷 매체인 서프라이즈의 전 대표 서영석씨 부인의 교수 임용 청탁에 문화관광부 차관이 직접 나서게 된 경위는 아직 소상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장관이 취임하기도 전에 장관과의 친분을 내세워 청탁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불과 몇 달 전 대우건설 대표가 한강에 투신한 것이 바로 청탁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이 정부의 차관과 친노 매체의 대표가 청탁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 역시 놀랍다.

▼청탁중심에 선 관료-친노매체▼

더욱 우리를 놀랍게 하는 것은 개혁의 전도사로 알려진 유시민 의원마저 그 정도의 부탁은 일상적인 일인데 지나치게 부산스럽게 일을 확대하고 있다는 투로 반응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신문고에 진정서를 낸 교수를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몰아세우면서 또 다시 보수언론의 탓으로 넘겨 버리려는 것인지 답답하다.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노 대통령을 지키려는 투신의 자세인지 궁금할 뿐이다.

개혁은 분명 혁명보다 어렵다. 소수의 주도로 과거를 청산하고 사회 변혁을 급격히 도모하는 게 혁명이라면, 개혁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수행해야 하기에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할 당시 어느 노학자가 김 대통령에게 개혁의 어려움을 조목조목 설파한 일이 있다. 개혁은 긴 시일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 개혁 세력과 반개혁 세력이 뒤섞여 양자를 선명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그리 개혁적이지 못한 세력이 개혁의 탈을 쓰고 선봉에 서지만 결국 단맛만 빼어 먹는 통에 개혁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쓴소리였다.

이는 노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 정부 출범 후 1년 동안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가 불거져 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좁히더니, 2기에 들어서자 개혁세력 내부에서 반개혁적 언행이 불거져 이 정부의 개혁이 휘청거리는 상황이다.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개혁세력의 외연을 넓히고 조직화해야 한다.

그러나 개혁세력을 넓히는 데 치중하다 보면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지지와 칭찬의 목소리가 당장 듣기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개혁세력의 진정한 덕목은 끊임없는 상호견제와 비판정신임을 잊어선 안 된다. 서프라이즈라는 인터넷 매체는 노 대통령의 지지 기반을 넓히는 데 큰 공헌을 해 왔다. 노 대통령 역시 서프라이즈 창간 1주년을 기해 기고문을 보내 화답했을 정도다. 개혁을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러나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공고화하기 위해 무조건적 지지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끼리끼리 문화의 폐해는 증폭될 수밖에 없다. 개혁을 위한 단합을 앞세우면서 서로 밀어 주고 감싸 주고 허물을 덮어 주며, 더 나아가 과거 기득권 세력들이 누리던 특권의 단맛에 취하기 시작할 때 이미 그 단합은 담합으로 추락하게 된다.

▼끼리끼리 문화에 국민 좌절감▼

국회의원의 특권을 과감하게 줄여 나가겠다고 하는 약속과 달리 동료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반대한 것 역시 무언의 담합이었다. 17대 국회의 다수당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지지가 연일 하락하고 있는 것은 담합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다. 개혁이 단지 주장으로 그칠 때 허탈하다. 개혁을 소리만 높이고 행동은 반개혁적일 때 좌절감을 준다. 그 반개혁적 행동을, 끼리끼리 집단을 이루어 거리낌 없이 자행할 때 개혁은 절망적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개혁을 내세우는 집단 안에 숨어 있는 반개혁적 세력을 용기 있게 솎아 내고, 개혁을 진심으로 원하는 비판 세력의 쓴소리를 고맙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민심은 여전히 개혁의 편에 서 있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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