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AI 세상에서 ‘느림’ 찾는 청년들
‘디지털 디톡스’로 떠오른 필사 열풍
필사 서적 판매량, 2년 연속 상승
“삶의 속도 늦추고 뇌 휴식 찾고파”
디지털 피로감에 지친 청년 세대 사이에선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손수 필사하는 ‘라이팅 힙(writing hip)’이 유행하고 있다. 독자 제공
최근 각종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해시태그 중 하나는 ‘독서노트’ ‘필사’ 등이다. 에세이 등에 실린 한 구절을 옮겨 적은 노트 사진을 공유하며 “매일 필사를 하면 작은 성취감이 쌓여 간다” “필사의 장점은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것” 등 필사를 예찬하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피로감에 지친 청년 세대가 다시 종이와 책을 집어 들고 있다. 기존 열풍이 책을 읽는 ‘텍스트 힙(text hip)’이었다면, 최근엔 읽고 쓰는 ‘라이팅 힙(writing hip)’으로 퍼져가는 모양새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세대에게 쓰기는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이 됨과 동시에, 빠르게 소비되는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손을 쓰는 행위 자체가 뇌를 쉬게 하는 휴식이 돼 준다고 한다.
자주 책의 일부 구절을 필사한다는 직장인 김모 씨(32)는 “하루 종일 화면을 보다 손으로 글자를 옮기면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라며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 노트를 보면서 예전에 적었던 문장을 상기하곤 한다”고 말했다.
필사, ‘라이팅 힙’ 열풍은 출판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2025년 도서시장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필사 서적 판매량은 전년 대비 64.7% 증가했다. 2년 연속 판매 상승세다. 신간 종수 역시 크게 늘어 403종으로 전년(181종)의 두 배를 넘어섰다. 최근 5년간 판매된 글쓰기 도서 베스트셀러 1위는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한 유선경 작가의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였다.
이런 아날로그적 취미에 맞춰 ‘맞춤 공간’도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기기 없이 사색과 글쓰기에 집중하는 ‘라이팅 카페’ ‘라이팅 룸’ 등이 급속도로 많아졌다. 이런 장소들은 대화 금지, 조도를 낮춘 조명, 개인 간 거리를 확보한 좌석 등이 특징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라이팅 카페를 즐겨 찾는다는 홍모 씨(26)는 “소음에 민감한 편인데 독서를 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기 좋았다”며 “어딜 가도 빠짐없이 소리 지르고 깔깔대는 사람들을 피해 제대로 쉬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2025년(1∼10월) 수도권 주요 라이팅 카페 이용 금액은 전년에 비해 71%가 증가했다. 이용 건수와 이용자 수도 각각 37%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문구숍의 이용 건수도 2023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라이팅 힙’ 덕에 아날로그적인 취미를 위해 필사용품인 노트나 펜 등을 찾는 이용객이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한카드 측은 “인공지능(AI)과 배속 시청, 숏폼 영상처럼 빠르게 소비하는 콘텐츠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환경 속에서, 오히려 속도를 내려놓고 뇌가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는 경험을 찾는 이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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