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재신임 묻겠다"]‘집권초 레임덕’…政權걸고 도박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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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기 위해 청와대 춘추관의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박경모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기 위해 청와대 춘추관의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박경모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은 경우에 따라 남은 임기를 모두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정치적 도박’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메가톤급이다.

그런 탓에 정치권은 곧바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노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데 분주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던진 승부수의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날 그의 발언으로 사실상 ‘레임덕 현상’이 시작됐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아 파장은 재신임 문제가 매듭지어질 때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취임 이후 측근인사들의 잇따른 스캔들과 국정운영의 미숙으로 인해 지지도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던진 ‘재신임 카드’는 앞으로 4년 이상 남은 임기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나 스스로 이 상태로 국정을 운영해가기 어렵다”며 상황반전이 없이는 국정수행이 어렵다는 절박감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이미 취임 초부터 소수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돌파구를 모색해 왔으나 날로 지지율이 떨어져 최근 일부 조사에서 10%대까지 이른 것으로 나타나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이날 회견에서 “언론환경, 국회환경, 지역적 민심의 환경이 나쁘다”고 말한 것도 정권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현실을 타개할 특단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나타낸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신당’ 카드에 가장 기대를 걸었으나 자신의 지지도 급락과 친노(親盧) 의원들의 정치력 부족으로 신당 카드는 이미 파괴력을 잃은 상태. ‘여야 대선자금 공개’라는 카드로 밀어붙이려던 정치개혁 구상도 상황을 뒤집기에는 여의치 않았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결국 노 대통령은 최도술(崔導術) 전 총무비서관의 SK비자금 사건이라는 위기를 ‘사즉생(死卽生)’식의 대반전의 계기로 삼은 듯하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으로서는 결국 내년 총선이 중대고비가 될 텐데 신당으로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며 “대통령 스스로 배수진을 치지 않으면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고 본 것 같다”고 풀이했다.

노 대통령은 이 같은 승부카드를 9일 인도네시아에서 귀국하기 이전에 이미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7일 오후 동남아국가연합(ASEAN) 각국 정상과의 회담 일정 중간에 최 전 비서관의 SK비자금 수수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았고 8일 아침 동행 기자들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국내에서 얘기하겠다”고 말해 나름대로 모종의 구상이 섰음을 시사했었다.

또 8일 저녁 수행원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2000년 총선 때 지역구인 서울 종로구를 버리고 ‘부산 출마’라는 모험을 감행했던 당시의 심정을 소개하면서 “명분이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을 수행했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사면초가(四面楚歌)다. 내년 총선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현 정부는 도덕성이 유일한 무기인데, 자꾸 스캔들이 터져 난감하다”고 말해 노 대통령이 특단의 카드를 고심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9월 초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으로부터 최 전 비서관이 SK비자금 사건에 연루됐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부터 나름대로의 구상을 가다듬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상당히 오랫동안 재신임 문제를 숙고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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