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시설 가동재개]한-미-중-일-러 전문가 분석

  • 입력 2002년 12월 13일 02시 39분


▼유석렬(柳錫烈)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는 중유 제공 중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12월부터 대북 중유 제공이 중단됐는데 북한은 이달이 다 가기 전에 다시 공급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공격적인 카드를 꺼내면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이 특이하다. 중유 공급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원자로를 재가동할 필요가 없는데 전력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가동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빌 클린턴 정부 때는 벼랑끝 외교를 구사했으나 조지 W 부시 정부 들어서는 그렇지 않다. 상대가 강경하니까 벼랑끝 전술보다는 설명하고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북한은 중유 제공까지 안 되는데 더 이상 제네바합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계속해서 버틸 경우 미국은 경수로 공사 중단뿐 아니라 대북 경제제재를 본격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견디기 힘들어진다.

결국 북한이 미국의 핵사찰 요구를 받아들이고 경제적 지원을 얻는 식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북한은 핵 외에도 생화학무기와 미사일 등 다른 카드가 있다. 수조 속에 보관 중인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도 있으나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과연 그렇게 할지 의심스럽다.

▼케네스 퀴노네스(미 인터내셔널센터 한반도 프로그램 이사·전 국무부 북한 분석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키로 한 것은 미국과 대결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하고 위험한 조치이다. 북한의 결정은 협상을 위한 것으로 보이나 동시에 전쟁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파기하고, 김정일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2개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으로선 정권교체는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은 전쟁에 대비,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미국이 예멘행 미사일 선박을 나포하고,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핵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 북한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미국은 당장은 군사작전에 나서지 않겠지만 긴장이 고조되면 이를 실행하려들 것이다. 최악의 경우 제2의 한국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 다만 영변 핵시설은 매우 낡아 재가동을 위해 수리, 보완하는 데 몇 개월이 걸린다.

그동안 한국 일본 중국이 대북 군사작전에 반대, 협상을 종용하면 미국이 응할 수도 있다. 어쨌든 몇 달간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전망이다.

▼한전서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는 중유공급 중단이라는 제재 수단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측의 의도에 대해 일단 강하게 반발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할 수 있다는 등 구체적 위협을 통해 미국이 우려하는 핵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음으로써 국면 전환을 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도 스커드 미사일 15기를 선적한 북한 화물선이 나포되면서 북한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도 담화가 나온 배경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은 북-미간 제네바 기본합의의 일방적 파기에 따른 외교적 부담도 저울질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중유 제공이라는 의무를 포기함으로써 먼저 합의를 어겼다는 논리를 펴고 나온 것이 그것이다. 핵시설의 재동결 여부가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면서 대화의 문을 계속 열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실상 북한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미국의 체제 보장과 경제 제재의 해제이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 명분만을 들어 대북 제재 일변도로 나간다면 상황은 더욱 꼬일 수도 있다.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한국과장▼

북한의 핵개발 동결조치 해제 선언은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다. 북한은 그동안 여러 차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건설이 지연될 경우 독자적인 핵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KEDO가 대북 중유지원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 이를 더 앞당긴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가능성에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은 간과하고 있다. 북한은 독자적이든지 외부의 지원을 받든지 간에 하루빨리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야 할 처지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런 북한을 계속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과 일전을 불사할 각오를 하고 실제로 핵개발을 재개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북한은 1994년처럼 핵개발 위협을 앞세운 ‘위험한 게임’을 하면서 미국과 대화의 돌파구를 열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물론 한반도에서의 비핵확산을 지지하며 북한에 대해 핵무기 개발 자제를 설득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군사적인 핵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미국이 제시하지 못하는 한 러시아는 미국의 방침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요시다 야스히코(吉田康彦) 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 교수(국제관계학)▼

북한이 핵 동결 조치를 즉각 해제하겠다는 이번 발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는 다분히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을 교섭과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라고 본다. 북한이 곧이어 다음 단계인 핵 개발, 미사일 발사 재개 수순을 밟아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이번 발표를 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북한측이 이번 성명을 통해 미국에 전하려는 것은 이제까지 거듭 주장해 왔듯 1994년 북-미간 제네바합의 가운데 핵심 사항의 하나인 전력 생산을 위한 중유 공급 약속을 미국이 먼저 깼기 때문에 미국이 이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다. 동시에 앞으로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핵 개발 단계로 점점 나가겠다는 협박이기도 하다.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북한은 핵 개발을 서두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도, 결국은 일본도 핵 개발에 나서게 될 수밖에 없어 커다란 문제가 된다. 미국으로서도 현재 이라크 공격 준비에 바빠 북한의 이 같은 요구에 당분간은 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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