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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28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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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나라당은 정확한 입수 시기와 경로에 대해서는 ‘내부고발자 보호’를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국정원 직원에게서 이 자료를 입수해 그동안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국정원이 3월 한 달 동안 도청한 통화내용을 요약 정리해 상부에 보고한 문서의 사본이라고 한나라당은 밝혔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문건은 국정원 고위 간부들에게만 보고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내부고발자가 국정원 간부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날 공개된 도청자료는 주로 ‘노풍(盧風)’이 불기 시작하고 한나라당이 당내 지도체제를 놓고 내분이 일어났던 민감한 시기에 민주당과 한나라당 핵심 인사들이 나눈 통화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국민경선 과정에서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밀어주자는 여권 인사들의 통화내용을 공개하면서 말로만 주장하던 민주당의 정치공작을 입증하려 했다.
또 한나라당이 내분을 겪고 있던 시기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고받은 통화내용을 공개함으로써 국정원이 한나라당의 내분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점도 부각시키려 했다.
한나라당측은 특히 기자들과 의원들이 나눈 대화내용까지 공개해 도청자료의 신빙성을 높이려 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도청 자료를 오래 전에 확보하고도 공개시점을 놓고 고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9월 정 의원이 국회에서 “국정원이 광범위하게 도청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한 뒤, 노 후보를 공격할 때마다 ‘때가 되면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의혹만 제기할 뿐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자료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한 고위 당직자는 “자료 공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개 시점을 저울질해 왔다”며 “후보 단일화로 ‘노풍’이 다시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데다 유세 초반에 기선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오늘(28일) 공개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나라당은 자료 공개에 앞서 자료에 이름이 등장한 당사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 자료에 언급된 대화내용을 직접 확인했다.
고위 당직자는 “도청자료에 언급된 당사자들에게 일일이 확인한 뒤 당사자가 맞다고 인정한 내용만 공개했다. 한 당사자는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며 깜짝 놀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제 입수한 3월분 도청자료는 공개한 것보다 2배나 많은 분량이지만 당사자들이 부인한 것은 공개하지 않았다”면서 “부인한 사람들도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염려해 일부러 부인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당사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한나라당 의원들과 기자들 대부분은 자료에 언급된 통화 사실과 내용이 맞다고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김 총장은 이날 자료를 공개하면서 “최근에 도청한 자료도 갖고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고위 당직자도 “폭발력이 있는 자료들이 많다”고 말해 도청자료 추가 폭로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