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님은 선거 운동중"…선거철되면 '눈가림 사퇴'

  • 입력 2002년 9월 30일 18시 10분


서울 성북구에 사는 A씨(56)는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9월 20일 통장직을 내놓았다. 선거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10년 넘게 통장직을 맡아온 A씨는 선거 때가 되면 통장직을 사퇴하고 선거운동을 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6개월 뒤 다시 통장직을 맡곤 했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행정전산화로 통장의 역할이 갈수록 줄어드는 등 사실상 통장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장제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선거운동에의 동원 등 선거 때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일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선시대 때 다섯 집을 1통으로 묶어 관리하는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에서 유래된 통·리장제도는 주민을 통제, 관리하는 역할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지방자치법 4조에 근거를 둔 통장제도는 예전에는 인력 동원, 마을 공동사업 추진, 새마을 운동 등 하는 일이 많았으나 요즘은 구정 홍보지 전달, 민방위 통지서 전달 등 하는 일이 예전에 비해 극히 미미하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민(民)과 관(官) 사이의 매개 역할을 했던 통장제가 행정전산망의 발달로 유명무실해졌다”며 “인터넷 발달로 홍보전단은 홈페이지에 나와 있고 고지서 등은 우편으로 전달되며 반상회도 사이버반상회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각 통장에게 지급되는 돈은 매달 10만원의 급여와 연 200%의 보너스, 정원의 10% 안에서 주는 자녀 장학금, 월 1만∼2만원의 회의참석수당, 명절 선물 등 1년에 최소 150만원 이상이다. 서울에만 1만3840명, 전국적으로 9만2500여명의 통장이 1년에 약 1400억원의 돈을 지급받고 있는 셈이다.

25개 구로 이루어진 서울의 경우 통장제 관련 예산이 207억6000여만원이나 된다. 이는 한 구에 매년 9억원 이상의 예산이 지출되는 것으로 9억원은 100평 정도의 사회복지시설 2, 3개를 건립하거나 가로등 350여개를 설치할 수 있는 비용이다.

이렇게 돈만 들고 유명무실해진 통장제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선거철에 행정의 하부조직과 같은 통장을 조직 동원과 금품 살포에 동원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란 것.

서울 서초구에서 통장을 지낸 B씨(55)는 “‘선거를 한번 치르고 나면 통장 집에 냉장고가 새로 생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통장들이 선거조직에 이용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의 통장 C씨(48·여)는 “선거법에 의해 선거운동에 참여하려면 통장직을 사퇴해야 하지만 많은 통장들이 알게 모르게 통장직을 유지하면서 특정 정치인을 지원하곤 한다”고 고백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통반장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많다”며 “여러 구로부터 문제점과 현황 등을 파악하고 있으며 대안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는 99년부터 자원봉사 통장제도를 도입해 매년 16억원의 예산을 절약하고 있다.

▼통장 한명에 드는 비용▼

·급여 월10만원 보너스 연200%

·회의참석수당 월 1만~2만원

·자녀 장학급, 명절선물

▶서울시 관련예산 연 207억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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