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풍3인 항소심 집유]"총격요청만 사실 개인적 돌출행동"

  • 입력 2001년 4월 10일 18시 48분


‘97년 12월, 판문점 총격 요청은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사전에 총격요청을 하기로 모의한 적은 없었다.’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이 같은 판단은 검찰 수사 및 1심 재판부의 판결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검찰과 1심 재판부는 97년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吳靜恩)씨와 한성기(韓成基) 장석중(張錫重)씨 등 3인방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측에 무력시위를 요청하고 총격 등의 장면을 카메라로 찍어 홍보하기로 결의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그 해 12월10일부터 12일까지 장씨와 한씨가 중국 베이징(北京)의 켐핀스키호텔에서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소속 이철운과 김영수, 아태평화위 박충 참사 등을 만나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검찰과 1심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두 가지 사실관계 가운데 첫 번째 부분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근거는 오씨 등 3명의 검찰 자백의 ‘임의성’과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재판부는 오씨 등 3명이 97년 11월 서울에서 모인 경위와 장소, 그 후의 행적 등을 종합해 판단해보면 무력시위를 모의하기에는 지나치게 허술하고 또 모의로 인해 얻게 될 대가관계가 불분명하다는 등의 8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또 한씨가 ‘모의를 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것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다”며 배척했다.

문제는 오씨 등의 자백 이유와 경위다. 자백내용이 허위라면 강압과 고문, 가혹행위 등이 있었다고 볼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인정한 이들의 ‘모의’ 내용은 ‘남한의 대선에 대한 북한의 동향과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한씨와 장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한 이 사건의 실체다.

따라서 항소심 재판부 판단에 따르더라도 ‘판문점 무력시위 요청’이라는 ‘총풍사건’의 뼈대는 유지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위요청은 사전 모의 없이,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우발적으로 이뤄진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총풍사건은 항소심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실체’로 변했다. 상고심에서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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