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기구한 사연들]생이별 순간들

  • 입력 2000년 8월 16일 18시 58분


50년간 생이별이라는 통한의 삶을 살아온 남북 상봉단의 이산(離散) 사연은 어느 하나 기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전쟁의 참화 속에 살붙이를 떨어뜨려야만 했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죄’를 빌었고, 50년이 흘러 할아버지가 돼 돌아온 남편은 아내의 주름진 손을 부여잡고 회한의 눈물을 떨궜다.

평양을 방문한 서순화(82·평남 대동군)할머니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던 막내아들 김병길씨(56)를 품에 안고 서울에서 준비해간 양말과 신발을 내놓았다. 51년 겨울 발에 동상이 걸린 병길씨를 데리고 피란을 오다 꽁꽁 얼어붙은 대동강을 함께 건너지 못한 채 어린 아들의 손을 놓아야 했던 피맺힌 모정의 ‘속죄’였다. 서씨는 “그때 너를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라며 통곡했다.

부인 오상현씨(77)와 아들 회종씨(64)를 만난 김일선씨(80·평남 평원군)는 서로 상대방을 찾아 헤매다 길이 엇갈려 버렸다. 50년 서울에서 살다 홀로 납북된 김씨는 북한군을 탈출해 고향에서 숨어 지내다 ‘1·4’후퇴 때 아내를 찾아 서울로 내려왔으나 아내와 네살배기 아들 회종씨는 김씨가 도착하기 5일 전 남편을 찾아 북쪽으로 떠난 뒤였다. 김씨는 “5일이 50년이 될지 누가 알았느냐”며 목놓아 울었다.

평남 개천이 고향인 정명희씨(72)는 병에 걸린 아버지의 약을 사오겠다고 나섰다 피란 행렬에 휩쓸려 끝내 고향을 다시 찾지 못했다.

서울을 방문한 북측 이산가족 중에는 자전거를 사러 나갔다 가족과 헤어진 이복연씨(73)의 사연이 심금을 울렸다. 서울에서 살던 이씨는 전쟁이 터지자 고향인 안동으로 피란하기 위해 자전거를 사러 나갔다 인민군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15일 50년 만에 이씨를 만난 남쪽의 아내 이춘자씨(72)씨는 자전거에 한이 맺힌 듯 “헤어질 때 사오겠다던 자전거는 사왔냐”고 물은 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김상현씨(67·황해 수안군)는 평양에서 누나 상원씨(69)를 만나 “1·4후퇴 때 누나가 백 리만 피란가 있으라고 해서 피란갔는데 헤어진 채 50년이 흘렀다”며 울부짖었다.

공부를 하고 싶어 18세이던 47년 부모님 사진에 큰절을 하고 서울로 몰래 왔던 윤대호씨(72·평남 순천군)는 53년 만에 평양에서 동생들을 만나 “사진이 아닌 부모님께 진짜 큰절이라도 올리고 떠났다면 이렇게 가슴 아프진 않았을 것”이라며 아들을 그리다 세상을 등진 부모님에게 속죄를 구했다.

서울 할머니댁에 놀러 왔다 고향인 경기 개풍군이 전쟁으로 북한땅이 되면서 고향을 찾지 못한 김홍택씨(57)도 지난 50여년간 ‘죄 없는 죄인’이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