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작곡가 故김순남씨 외손녀 강수진기자의 '전상서'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35분


어머니는 요즘도 신문과 TV에서 이산가족 상봉 관련 뉴스를 볼 때면 느닷없이 “울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 하시며 꺽꺽 목놓아 우십니다.

할.아.버.지.

‘3인칭’이 아닌, ‘2인칭’으로 부르는 할아버지는 어쩐지 어색합니다. 제게는 외할아버지란 없는 존재나 다름 없었으니까요.

스무살쯤이었나요, 외할아버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때가. 어머니가 혼자 방안에서 보고 있던 낡은 흑백 사진들…. 누군가의 결혼사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정말 죄송합니다, “엄마, 이 못생긴 신부는 누구야?” 하고 물었답니다.

그날에야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월북한 작곡가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절대 밖에서 얘기하면 안된다”는 당부와 함께. 어머니는 똑같은 얘기를 여덟살 때 들었다고 합니다. “왜?” 하고 철없이 되물었던 저와 달리, 겨우 여덟살이던 어머니는 “남이 알면 큰일난다”던 말을 말없이 마음속 깊이 새겨놓았던 모양입니다. 몇년 동안은 낯선 남자만 보면 할아버지가 간첩이 돼 내려온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하니까요.

88년 해금조치 이후 어머니는 몇장 안되는 할아버지 사진을 당당하게 액자에 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할아버지 사진과 어느새 50을 훌쩍 넘어 할머니가 된 어머니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을 볼 때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핏줄은 과연 무엇일까요.

다시, 할아버지의 결혼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이제는 잘생긴 할아버지보다도 자꾸만 할머니에게 눈길이 갑니다. 들꽃을 안고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신부. 불과 스물다섯에 청상과부가 된 우리 외할머니. 수십년의 세월을 홀로 견뎌내신 할머니는 올해 꼭 여든이십니다.

이런 사사로운 개인사에 얽매이기엔, 할아버지는 너무 큰 분이라고들 하지요. 한국 최초의 현대음악가, 해방 공간 최고의 민족음악가….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할아버지 음악을 잘 모릅니다. 백남준씨가 “육필악보를 찾을 수만 있다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사겠다”고 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조수미씨가 감탄하며 부른 가곡 ‘산유화’를 듣고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곡, 직접 노랫말까지 쓰신 ‘자장가’를 들을 때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잘자거라 우리 아기, 귀여운 아기/엄마 품은 꿈나라에 꽃밭이란다/바람아 불지마라, 물결도 잠자거라/아기 잠든다/우리 아기 꿈나라 고개 넘으면/엄마의 가슴 위에 눈이 나린다…’

할아버지의 음악을 연구하는 분들은 자장가의 ‘아기’는 민족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장가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에서, 지척에 어린 딸을 두고도 얼굴조차 못 본 채 체포령을 피해 떠나야 했던 안타까운 부정(父情)을 느낍니다.

할아버지, 저도 어느새 아기 엄마가 됐답니다. 제 아들은 매일 슈베르트가 아닌, 증조부의 자장가를 들으며 소르르 잠이 듭니다. 평화롭게 잠자는 아이를 보면서 괜시리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바꾸었던 이상(理想), 그러나 차가운 현실속에서 쓸쓸히 눈을 감아야 했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는 더이상 이념의 갈등도, 이별의 아픔도 없기를 바라봅니다. 오늘은 할아버지께 자장가를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편안히 주무세요.

<강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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