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때 이런 일이…" …정부, 보안의식 허술

  • 입력 2000년 6월 21일 18시 54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될 두 정상간의 민감한 대화 내용이 언론에 누출되는가 하면 정부 당국자들이 중요 사안에 관해 엇갈린 발언을 하는 등 큰 혼선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평양발 뉴스’의 충격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국민만 심각한 인식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이같은 혼란상은 정상회담이 비선(秘線)조직 위주로 추진돼 내부의 의견 조율이 전혀 안된데다가 당국자들의 허술한 보안 의식과 사후 관리의 허점에다 일부 수행원들의 ‘빗나간 공명심’이 겹쳤기 때문.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을 겨우 한 차례 하고서도 이처럼 혼란이 빚어진다면 앞으로 회담의 정례화는 물론 남북간에 순조로운 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허술한 보안의식▼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는 얘기는 19일 오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던 문정인(文正仁)연세대교수가 민주당 ‘386’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처음 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민감한 내용의 외부 유출은 김위원장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 가능성이 커 “외교 관례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위원장이 주한 미군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얘기도 경로는 복잡하지만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이 여야 영수회담에서 나온 얘기를 기자들에게 확인해 줌으로써 기정 사실화되고 말았다.

임동원(林東源)국가정보원장의 정상회담전 방북 사실도 임원장 자신이 교계 지도자들에게 말함으로써 알려진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혼선▼

2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한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법적으로 국군포로가 없다”고 발언, 국방부측이 반박 성명을 내는 소동을 빚었다.

또 김위원장의 순안비행장 영접에 대한 정부의 사전인지 여부를 놓고도 박장관과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은 “사전에 몰랐다”고 부인한 반면, 황원탁(黃源卓)대통령외교안보수석과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은 “알고 있었다”고 시인해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지 국민만 헷갈리게 하고 있다.

이같은 혼선을 놓고 21일 열린 민주당 지도위원회의에서는 “남북정상회담에 관여한 당국자와 수행원들은 국익 차원에서 회담 내용 공개를 자제하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건국대 북한학과 강성윤(姜聲允)교수는 “남북관계의 급격한 상황 변화 속에서 정부 당국자들조차 인식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자칫하다간 정상회담의 참뜻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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