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개혁파 탈북 줄이을까…김정일 강경론에 밀려 고립

  • 입력 1997년 2월 18일 08시 56분


[동경〓이동관 특파원]북한 노동당의 黃長燁(황장엽)비서가 미국중앙정보국(CIA)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북한의 핵심간부 5∼7명이 자신에 뒤이어 후속 망명을 준비중」이라고 증언한 것은 북한 권력 핵심부내에 「체제 생존전략」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부분열이 빚어지고 있음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94년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던 金日成(김일성) 사망이후 북한권력층은 중국형의 과감한 대외개방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개방개혁파와 과감한 개혁이 사회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농업분야 등의 부분개혁을 주장해온 강경파로 나뉘었다. 물론 김정일은 강경파의 주장에 손을 들었다. 군부내에서는 「유사시 한국과의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극단론까지 대두됐고 그 단적인 예가 작년 4월 총선직전 발생한 북한 무장군인들의 판문점 난입사건이다. 개방개혁파의 정신적 지주에 해당되는 인물이 황비서다. 그는 작년 2월 모스크바에서 가진 강연에서 「어떤 전쟁을 벌여서도 안되며 인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급선무」란 취지의 강연을 한 것을 계기로 강경파들의 비판의 표적이 됐다. 결국 황비서의 망명은 이들 개방개혁파의 응집된 불만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가 「대표선수」로서 망명을 결행했음을 암시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북경과 도쿄의 고위정보 소식통들은 고위간부의 추가망명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다 그같은 정보도 있다』고 시인하고 있다. 황비서가 CIA 면담에서 밝힌 것처럼 이들 개방개혁파의 불만은 김정일에 집중돼 있다.그의 강경 모험주의 노선이 남북대화 진전은 물론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황비서의 측근으로 함께 망명한 金德弘(김덕홍)도 평소 접촉해온 일본 관계자들에게 『김정일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소식통도 『외부에 알려질 만큼 주목할 만한 사건은 아니나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여러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CIA와의 면담에서 황비서가 추가망명자의 직위와 이름을 적은 구체적인 명단을 제공한 만큼 상식적으로는 이들 개방개혁파에 대한 대대적 숙청작업의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분석가들로부터는 지난 70년대 김정일이 전면에 나선 이후 본격 숙청작업이 한번도 없었던 점을 근거로 김일성보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일이 쉽사리 숙청을 단행하지 못할 것이란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황비서가 김일성대 총장으로 북한엘리트층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던 인물인 만큼 그의 망명과 후속 망명자 명단공개는 북한내부에 체제전복움직임의 「씨앗」을 뿌린 것만은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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