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멎은 지 59년… ‘상처의 땅’ 예술이 보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5일 03시 00분


6·25 휴전 59주년… 국내외 작가 11명 철원서 ‘리얼 DMZ 프로젝트展’

철원 노동당사 앞에 설치된 김량 씨의 ‘나의 성스러운 처소’는 지역 농민들이 실제 사용했던 농사용 기구를 소재로 만든 설치작품이다. 철원=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철원 노동당사 앞에 설치된 김량 씨의 ‘나의 성스러운 처소’는 지역 농민들이 실제 사용했던 농사용 기구를 소재로 만든 설치작품이다. 철원=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철원평화전망대에 자리한 니콜라스 펠처의 ‘이탈된 시네마’(위), 제2땅굴에 설치된 독일 작가의 샹들리에.
철원평화전망대에 자리한 니콜라스 펠처의 ‘이탈된 시네마’(위), 제2땅굴에 설치된 독일 작가의 샹들리에.
6·25전쟁 당시의 총탄과 포탄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강원 철원 노동당사. 23일 이곳을 찾았을 때 잿빛으로 그을린 채 3층 뼈대만 덩그러니 남은 건물 앞에 놓인 낯선 구조물을 발견했다. 농부들이 한꺼번에 모판을 나르기 위해 만들었던 모 지게를 ‘지역의 기억’을 담은 집으로 해석한 김량 씨의 설치작품이다. 경원선의 최북단 지점 월정리역에서도, 치열한 접전으로 4만 명이 전사한 ‘피의 능선’이 건너다보이는 평화전망대에서도 분단과 접경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이 녹아든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실험적 미술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무소(SAMUSO)’가 철원군청이 운영하는 안보관광코스를 따라 기획한 ‘리얼 DMZ프로젝트 2012’전에 선보인 작업이다. 개막(28일)에 앞서 공개된 이번 전시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비무장지대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현대미술을 통해 ‘참된 비무장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했다.

국내외 참여 작가 11명(팀)의 작품들은 무장이 허용되지 않은 군사적 완충지대지만 가장 철저한 무장으로 남북이 대치한 부조리하고 역설적 상황에 질문을 던진다. 영국 작가 사이먼 몰리는 익명의 남북한 군인 얼굴을 대형 현수막에 인쇄해 전망대 앞 건물에 설치했다. 얼굴만 봐선 어느 쪽이 남인지 북인지 구분할 수 없다. 독일 작가 디르크 플라이슈만은 ‘기억하라 총성은 멎었지만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등 이곳서 만난 문구나 표지판을 모노레일 창에 옮겨 바깥 풍경과 겹치게 했다. 1975년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제2땅굴에선 그가 신효철 씨와 협업한 샹들리에 작품이 놓여 있다. 특별한 장소를 밝히는 눈부신 조명은 마치 고문용 불빛처럼 강렬하게 시선을 파고든다.

평화전망대에는 실제 군사분계선의 풍경이 아니라 프랑스 작가가 만든 허구의 풍경을 보여주는 색다른 망원경도 있다. 월정리역에는 관광지처럼 변해가는 비무장지대의 모습을 기록한 노순택 씨의 사진을, 남북관계를 동성애적 근친 관계에 빗댄 김실비 씨의 영상이 선보였다.

프로젝트를 둘러본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교수인 안토니 문타다스 씨는 말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불안과 긴장의 공간이란 상반된 특징을 지닌 분쟁의 장소에서 예술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가 신선했다.” 철원군도 이번 프로젝트를 반겼다. 서경원 부군수는 “우리는 접경지역의 주민으로서 고통의 60년을 보냈다”며 “분단으로 가장 고통받은 땅에서 열리는 문화행사가 평화의 싹을 틔우는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27일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59주년이 되는 날. 일제강점기, 수원과 대전에 버금가는 인구 2만 명의 번성했던 도시가 전쟁으로 연기처럼 사라진 현장에서 열리는 전시는 ‘상처의 땅’을 ‘희망의 땅’으로 바꾸려는 문화의 힘을 보여준다.

관람은 전시기간(28일∼9월 16일) 철원군의 안보관광에 참여하거나, 매주 토요일 서울에서 출발하는 ‘사무소’의 전시투어에 신청해야 한다. www.realdmz.org

철원=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평화 전망대#리얼 DMZ 프로젝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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