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파평면 주민들 ‘인재육성 씨앗’ 심다

  • 입력 2008년 12월 17일 03시 03분


대출 받고… 농사 짓고… 경비 서고… 장학금 3억 모금

경기 침체로 더욱 춥고 을씨년스러운 요즘 경기 파주시 파평면은 장학금 조성 열기로 후끈하다.

이 열기를 이끌어낸 사람은 이 지역 주민 이갑열(67) 씨와 이웃 주민 20여 명이다.

6·25전쟁 때 가족을 잃어버려 학교에 다니지 못한 이 씨는 적금과 대출로 마련한 2억 원을 냈다. 또 농사를 짓고, 야간 경비를 서거나, 혼자 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이웃들이 올해 가을부터 500만∼1000만 원씩 내 지금까지 모두 3억 원이 마련됐다.

기금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장학회원으로 가입해 기회가 닿을 때 동참하겠다고 한 주민이 100명을 넘어섰다.

인구가 4500여 명인 파평면은 택지지구나 레저타운, 대학이 없는 전형적인 농촌지역. 이 씨 등 주민들은 지역에서 열심히 공부해 사회적 인재로 성장하는 학생이 나와야 지역도 발전한다는 생각에 서로서로 힘을 보태 장학기금을 조성했다.

시작은 이 씨의 적금이었다. 그는 2002년부터 매달 200만 원의 적금을 부어 4년 만에 1억 원을 만들었다. 그 이자로 2006년 군 제대 후 복학하려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려던 학생에게 장학금을 줘 서울의 명문대 공대를 무사히 졸업하게 했다.

좀 더 체계적으로 장학금을 주려고 장학재단 설립을 알아보니 기금이 3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해 그는 다시 적금을 시작했다. 4자녀를 대학, 대학원까지 보낸 뒤라 노부부의 용돈을 줄여가며 적금을 부었다.

이미 만든 1억 원에 현재까지 모은 5000만 원, 그리고 논을 담보로 대출받은 5000만 원을 합쳐 그가 올해 내놓은 장학기금은 2억 원이다.

그가 기금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나도 보태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혼자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김남월(60·여) 씨가 9월 1000만 원을 냈다. 공장에서 경비로 일하는 허철욱 씨도 500만 원을 냈다. 두 자녀가 대학에 다닌다는 농민 윤흥열(50) 씨, 이장인 임용석(50) 씨, 파평면사무소에 근무한 인연이 있는 파주시 직원 이완용(42) 씨가 여기에 동참했다.

불황에 큰돈을 내는 게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요즘이 정말 힘들고 어려운 때인 것은 맞아요. 벌이가 안 좋으니 힘들죠. 하지만 내 지역의 미래를 위해 이렇게 힘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내 평생에 또 오겠어요?”

주민들은 ‘파평참사랑 장학회’라고 이름 짓고 내년 초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해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이 장학회는 ‘가정이 어렵지만 학업 성적이 우수하다’는 기준 외에 까다로운 선정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 이색적이다. ‘부모가 엄하게 자식(장학생)을 가르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어른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 또 기금을 낸 회원들 자녀는 수혜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씨는 어려운 시기에 거액을 낸 이유에 대해 “힘들 때일수록 나중을 생각해서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파주=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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