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오도넬 교수 “언론의 정부견제 포기땐 후퇴 초래”

  • 입력 2006년 7월 18일 03시 05분


코멘트
기예르모 오도넬 교수 동아일보 자료 사진
기예르모 오도넬 교수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지만 위기야말로 민주주의가 지닌 본질적 속성의 하나입니다. 민주주의는 위기의식 속에서 발전해 가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9∼14일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열린 세계정치학회(IPSA) 제20차 세계대회에서는 ‘정치학의 노벨상’을 겨냥해 만든 제1회 ‘평생업적상’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유럽에서 명성이 높은 마테오 도간 재단과 세계정치학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이 상은 3년에 한 번씩 ‘최고의 업적을 쌓은 정치학자’를 선정해 수여하는 것. 첫 수상자에 기예르모 오도넬(68) 미국 노터데임대 교수가 선정됐다. 세계정치학회 부회장 겸 학술상위원장인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이 12일 현지에서 오도넬 교수를 만났다.

오도넬 교수는 1988∼1991년 IPSA 회장을 지내는 등 남미가 배출한 최고의 사회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1970년대 남미 정치 분석을 토대로 후발 산업국에서 경제적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 군부와 관료 엘리트집단이 정치를 장악하고 효율과 성장을 강조하며 민주적 정치 과정을 배격하는 ‘관료적 권위주의’가 탄생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또한 이런 권위주의 정권이 자유화-민주화-사회화라는 단계를 거쳐 공고한 민주주의 체제로 발전해 간다는 민주화 이행 이론을 개발했다. 그의 이론들은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국내에도 많은 저서가 번역됐다.

―당신은 권위주의 체제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에 관한 수많은 저술로 세계의 정치학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성장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르헨티나는 군사통치 아래 인권 탄압과 부정부패를 겪었습니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에 군사정권의 폐해에 분노하고 민주화를 열망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평생 이 주제 하나만을 붙들고 살아온 셈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밝혀 오셨는데요.

“민주주의 위기론은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되었으나 정부의 무능력으로 혼란이 계속되고 경제가 좋아지지 않고 있으니,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걸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모순 긴장 갈등을 안고 있으며, 그래서 위기의 요소들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또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비관론도 위기론도 나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논란이 ‘분분한’ 개념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이 이런 분분한 논란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민주주의의 질(quali-ty)’의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 설명해 주시지요.

“민주주의의 질의 높고 낮음의 기준으로 절차, 내용, 결과의 세 가지 차원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절차는 ‘공정하면서 정기적인 선거를 하고 있는가, 특히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장되어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내용은 ‘국민의 기본권과 평등권이 보장되는가’를 의미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의 자유와 사법부의 독립입니다. 지난날 군사정부들은 이 두 부문을 집중적으로 억압했습니다. 결과는 정부 정책의 효과를 말하는데 그것이 결국 정부의 무능과 유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문제는 정부의 무능이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 낮은 민주주의’를 ‘질 높은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데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민주주의의 장래와 관련해 우려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민주주의’와 ‘위임 민주주의’의 현상입니다. 전자는 국민이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정부를 선출한 뒤 그 정부가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하기를 바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후자는 일단 민주주의적으로 정부를 선출한 뒤 국민이 실질적인 견제를 가함이 없이 내버려 두는 현상입니다. 양자는 모두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인 균형과 견제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민주주의의 후퇴를 낳게 됩니다. 이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언론의 본질은 권력의 견제를 통해 최소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는 데 있습니다.”

후쿠오카=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