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업소 세대별「대표DJ」들이 말하는「어제와 오늘」

  • 입력 1999년 3월 22일 18시 51분


DJ 1세대 김소민씨
DJ 1세대 김소민씨
94년, 디스코텍에도 노래방 시설을 갖춘 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에선 ‘감춰진 자아’가 가감없이 드러났으며 무리의 직업, 성향과 ‘수준’에 따라 고유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때론 스테이지에서, 때론 룸에서 손님과 애환을 함께 하는 야간업소 DJ. 그들에게 손님은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94년부터 DJ로 활동하다 영업이사가 된 김소민(28·여·서울 강남구 신사동 댄스클럽 ‘릴리스’). 서울 힐튼호텔 나이트클럽 ‘파라오’에서 96년부터 활동해 온 김보성(24). 작년 초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신세대 권영수(21·서울 강남구 청담동 댄스클럽 ‘블루 오페라’).세대를 달리하는 이들 DJ의 증언에 따르면 이 사회는 분명 ‘진화’하는 것같다.

▽기능적 DJ에서 전지전능한 DJ로〓DJ들의 표현을 옮기면 손님들은 ‘단타’에서 ‘장타’로 스타일이 변했다. 환자 의사 아줌마 복장과 가면을 착용한 DJ들이 한바탕 폭소춤판을 벌이고 나면 후한 팁을 준 뒤 폭탄주를 나눠 마시고 훌쩍 자리를 뜨는 손님들이 이젠 드물다. 언더락스를 홀짝거리다 지루하면 노래 한두곡 부르는 식. 따라서 DJ에겐 춤실력 못지 않게 빼어난 외모와 능란한 화술이 ‘덕목’이 됐다. 얼마전 ‘블루 오페라’에선 영업이 끝나고 회의시간에 ‘메인(몇명의 DJ를 거느리는 상급 DJ)’이 나서 한일어업협상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초보 DJ가 “손님이 ‘쌍끌이 어선’ 운운하는데 무슨 말이냐”고 물어온 데 따른 것. 메인들은 매일 오전 7시 TV뉴스를 시청하며 화제가 될 사건이나 핫이슈 등을 메모한 뒤 잠자리에 든다.

▽‘끼’의 보편화〓스스로 ‘연예인만큼 춤실력과 외모가 뛰어나다’고 ‘믿는’ 손님이 늘었다. 때문에 잘 생기고 춤 잘추는 DJ라도 막무가내로 실력발휘했다간 손님의 질투심과 굴욕감을 자극하기 일쑤. DJ들은 ‘끼’있는 손님이다 싶으면 외모를 무조건 칭찬하며 자신은 바보처럼 웃는 ‘기술’을 사용한다.

최근 한 댄스클럽에서 열린 결혼피로연의 경우 중매결혼한 신부가 갑자기 테이블 위로 올라가 즉석 춤판을 벌이기도. DJ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과장되게 연출해 내는 ‘뛰어난 구경꾼’의 역할도 해야 한다. 폭탄주를 애호하는 여성이 늘면서 여성 손님이 단체로 올 경우 수소폭탄주 회오리주 등 다양한 폭탄주를 만드는 기술을 가진 DJ도 인기.

▽이미지를 즐긴다〓과거 ‘부(富)’를 상징하던 ‘스테이크’나 ‘스페셜’ 등 안주는 촌스러운 이미지로 변했다. 과일안주가 귀족적으로 인식되는 분위기. 나이트클럽에선 옆 테이블의 여성을 사로잡는 남성들의 방법도 바뀌었다. 여성들이 마시는 양주보다 한두 등급 비싼 양주를 주문하던 것에서 탈피, 코로나나 하이네켄 등 상대적으로 덜 보편화된 브랜드의 맥주를 선택함으로써 술을 ‘즐긴다’는 이미지를 풍기려한다. ‘접촉’의 기회였던 블루스 시간도 사라지고 있다. 블루스 음악 대신 느린 템포의 힙합음악에 맞춰 몸을 약간씩 흔드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 ‘욕망의 노예가 아니다’는 이성적 메시지를 풍길 수 있다는 것.

▽불변의 진리〓△술자리는 ‘광야에서’ ‘아침이슬’ ‘사랑으로’ 등 노래로 끝맺기 일쑤라는 것 △유학생 오렌지족 연예인은 팁을 ‘짜게’ 준다는 것 △생전 처음보는 남자손님인데도 “DJ, 오랜만이네!”하며 동반한 여성에게 ‘프로’의 인상을 심어주려 노력할 때는 “아유, 왜 그렇게 뜸하셨어요”하고 화답해야 한다는 것 등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

〈이승재기자〉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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